유도중앙도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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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한 유도중앙도장(3)
박용성회장, 합리적 방안 모색제시 1991년 특위가 해산되고 유도회와 유도원의 경영권 논쟁은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도회의 박용성 회장은 1992 대의원 총회에서 전격적인 제안을 한다. 당시 은 대의원회의에 참석한 각 시도대의원들과 ‘유맥회’라는 올림픽과 세계대회 메달리스트들의 모임인 소장 유도인들의 지지를 받으며 긍정적이고 합리적인 조처로 평가받았다. 이 제안은 1991년 대의원총회의 위임을 받아 유도회와 유도원의 통합을 추진해 온 9인 특위 활동의 무산과 해산을 계기로 기존방식으로는 통합에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고 보다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한 박회장의 아이디어였다. 당시 박회장은 시가 200억원에 이르는 유도원의 자산을 두고 유도인들의 이해관계에 개입을 꺼려 유도계의 현안에 무관심했다는 ..
2010.04.22 -
한국유도원 여의도시대의 갈등(1)
1972년 5월 18일 오후 2시. 여의도에 한국유도의 메카인 한국유도중앙도장 기공식이 거행됐다. 대지 2200여평, 지하1층과 지상2층으로 건편 668평. 당시 총공사비 7800여만원으로 1972년 11월 준공을 목표로 기공식을 가진 것이다. 이 당시 설립주체는 재단법인 한국유도원으로 당시는 대한유도회 지원단체였다. 기공식에 참가한 사람으로는 장경순 당시 대한유도회장, 양탁식 서울시장, 신도환, 신동관의원, 그리고 유도인 200여명이 참가했다. 서울 소공동에 있던 중앙도장을 매각한 후 4년만이다. 그러나 이 기공식에도 불구하고, 예산부족으로 60%의 시설공사중 1년 반만에 공사가 중단됐다. 당시에 예산부족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사실상 유도계의 파벌싸움으로 중단되었다. 중앙도장이 없던 이 시기에 대부분의 ..
2010.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