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도장'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11.21 도장깨기
  2. 2010.05.30 최초의 영화무술도장은 화랑중앙도장?
  3. 2010.01.11 일제시대 도장은?
Report/Martial Arts2010.11.2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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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엽문'의 도장깨기 장면


간혹 중국영화를 보면 스승의 복수를 위해 남의 도장에 가 대련하는 모습이 나온다. 심지어 도장 간판을 떼어 가져오는 일도 있다. 또 영화 바람의 파이터를 보면 최배달이 여기저기 돌아 다니며 겨루는 모습이 나온다. 이런 것들을 일명  '도장깨기'라 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해방이후 도장이 생기면서 역시 누가 강하냐를 놓고 도장깨기를 하러 다녔다고 한다. 1960년보다 1970년대가 유독 많았다고 당시 도장을 다닌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해외로 진출한 사범들 역시 도장깨기는 넘어야 할 산이었다. 기득권 무술로 10여년 빨리 정착되어 있던 가라테나 쿵푸도장들 속에 코리안 가라테나 태권도라는 이름으로 도장을 열면 당연 겨루기신청이 들어올 수 밖에 없었고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인사범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도장을 지켰다. 기술의 차이에 따른 경기방법을 제시하기도 했고, 운이 좋아 샌드백을 차니 샌드백이 떨어져 고비를 넘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러한 도장깨기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무엇보다 밥벌이를 위한 도장지키기에 치중하다보니 당연히 주변에 도장이 들어서면 귀찮은 존재였을 것이다. 관원의 확보를 위해 '센 도장'이라는 인식이 필요했을 것이고, 사이비가 아닌 정말 실력있는 도장이라는 것을 밝혀내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1977년 동아일보에는 "서울의 모도장에서는 날씨가 추워지자 난로를 피워놓았고 수련을 쌓는다는 수련생은 도복안에 내복까지 끼워 입었다. 또 모도장은 훈련도중 거리낌없이 담배를 꼬나문 수련생이 있는가 하면 피로하다고 두다리 뻗고 앉아 쉬는 모습도 보였다."라고 하여 당시의 도장 수련생들의 분위기를 알 수 있다.

당시에도 78개의 각종 무술단체로 사분오열, 서로 상대방을 사이비라고 헐뜯는 한심한 상태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TV에 출연하여 묘기를 선보이는 태권도나 합기도 사범이 쇼같다는 공허함도 느끼게 한다고 했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조금 큰 규모의 운동겨기가 벌어지면 경기장에 30-40명의 정복경찰관이 배치되기도 했다고 한다. 걸핏하면 일어나는 선수들끼리, 또는 응원단사이의 싸움이나 판정에 불만을 품은 선수와 감독이 심판에게 퍼붓는 폭행을 막기 위해서란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무술역시 교육이고 뭐고 없이 오로지 승부사를 만드는 것이 목표아닌 목표가 되던 시대다.
 
하지만 도장깨기의 특성은 몇가지 있다.

첫째는 무술이 기술별로 세분화되면서 나타나는 신생무술들의 검증단계다. 시간적으로 무술의 도장이 생겨난 초기에, 그리고 보급초기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둘째는 도장깨기가 빈번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다. 도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 도장을 중심으로 집단의 응집력이 강했다. 이러다 보니 당연히 강한 도장에 다닌다는 인식이 필요했다.

셋째는 먹고살기 위한 방법으로 도장간의 경쟁력때문이다.

넷째는 개인이 어느정도 강한가를 검증하기 위해 여기저기 도장을 다니며 겨뤄보는 것으로 강한 무술인이 되고픈 순박(?)한 생각에서다.

이러한 도장깨기는 지금도 있을까?
방법이야 다르지만 지금도 존재한다. 일명 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해 살아 남아 있다. 무술의 실력을 견준다기 보다는 주변에 도장이 있으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다. 일명 샌드위치 도장(自도장-他도장-自도장 또는 동문도장)을 운영하는 방식이라든가, 수련비를 할인하는 경우, 각종 이벤트를 위해 초등학교 정문에서 선전물품을 나눠 주는 경우 등으로 일명 도장마케팅이라는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또, 각종 경기에 출전해 입상을 내세워 도장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지금 도장들의 수련생분포는 대부분 어린 수련생이다. 이러한 이유때문인지 과거와 달리 도장깨기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각종 대학들이 참가하는 대학연맹들의 경기는 도장깨기와 유사한 대학깨기같은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하지만 스포츠인 이상 과거의 분위기는 아니다.

도장깨기. 어찌보면 비신사적인 것으로 여길지 모르지만, 이것이 없다보니 여기저기 묘한 도장들이 생겨나는 것은 아닌지 생각도 해 본다. 도장깨기를 구지 나쁜 것으로만 여긴다기 보다는 무술의 한 문화로 인식해 보는 것은 어떨지.

아마도 수련생 마음속에 이미 도장깨기가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수련생들이 내색은 안하지만 어디는 어떻고, 어디는 어떠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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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Martial Arts2010.05.3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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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중앙도장의 모습과 당시 무술을 배우고 있는 영화배우와 탈런트들..(출처: 경향신문)


1969년 4월 5일자 5면 경향신문에는 국내 최초의 영화무술전문도장으로 보이는 도장소개가 보도됐다. 보도된 내용에 의하면, 중국검객영화의 흥행으로 국내 영화사들이 검객물을 다루면서 전문도장이 생겨났는데, 이 도장의 이름은 '한국고유무예선양단 화랑중앙도장'이다. 이도장은 1969년 4월 1일 개관했다고 이 신문은 알리고 있다.

이 도장에서는 삼국시대에 전해왔다는 검술, 봉술, 창술, 검법을 지도했는데, 이 당시 검술은 동국검, 쌍수도, 단검, 월도, 청릉도법, 청롱쌍도 등 20여가지로 알려졌다.

당시 영화에 출연했던 박병호(탈런트) 등 40여명이 수강신청을 해 안시법, 자세법, 참법, 타법, 척법, 방법 등을 익히고 있다고 알렸다. 이 시기에 각 영화사들이 검객물을 계획했던 것은 '어사와 흑두건'(장일호감독, 후에 김기풍감독이 맡음), '과객'(권철휘감독), '무정검'(임권택 감독, 후에 이 영화는 권영순감독이 맡음) 등 20여편이라고 설명했다.

이 도장의 사범은 당시 태권도8단 범사라는 칭호를 받은 박빙진朴氷鎭(당시 37세)로, 그가 인터뷰중 한 말이 이색적이다.

"1천여명의 검사들이 한국에 와서 검술을 배워간 일까지 문헌에 남아 있다"
"우리나라의 금계독립세는 동양 검술의 기본자세"라고 역설했다는것.

이런 이야기는 어디서 나왔는지 당시 사범들의 인식이 궁금하다. 또, 박빙진사범이 태권도8단이라고 했는데, 그에 대해서는 어느 문헌에도 아직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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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Martial Arts2010.01.11 03:11
일제통치하에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스포츠종목이 유입되었다. 선교사들에 의해 서구스포츠가 유입되었으며, 일본인들에 의해 학교체육 및 일본무도의 유입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지금 체육사나 무술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당시의 자료를 국내에서 접할 수 있는 것은 당시의 신문기사나 일부연구자들의 연구물을 참고하는 수준에서 정리되고 있다.

  필자는 얼마전 일제당시 조선총독부나 민간인들에 의해 시설을 갖추고 있던 무도도장 현황에 대해 1934년에 일본문부성에서 보고된 자료를 발견했다. 당시 일본인들은 검도도장뿐만이 아니라, 유도, 궁도, 스모 등 일본 무도와 더불어 육상, 정구, 야구, 축구 등을 할 수 있는 시설까지 모두 조사되어 있었다. 그 내용중 검도, 유도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 보고서의 내용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6개지역 - 경기도(경성포함), 충청남북도, 전라남북도, 강원도, 평안남북도, 함경남북도 -을 구분해 설비명칭, 소재지, 개설년도, 면적(평), 용도, 관리자로 구분하여 정리하였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 표와 같다.


[경기도]

설비명칭

소재지

개설년도

면적(평)

용도

관리자

 경성무덕관

경성부 황금정

 1912. 7.

  120

 검도

陳丿內廘

 강도관

경성부 장곡천정

 1917.11

  120

 유도

篠田治作

 인천무덕관

인천부 산수정

 1922.10

   54

 검도, 유도

仁川府尹

 송도광무관

개성부 만월정

 1925. 8

   -

 유도,역기,체조

김홍식

 개성상무관

개성부 대화정

 1927.11

   73

 검도,유도

개성경찰서장

 평택무도관

진위군

 1931. 7.

   12

 유도

박상만

 이천체육회운동장

안성군

 1931.11.

   32

 유도

분상동

[충청남북도]

설비명칭

소재지

개설년도

면적(평)

용도

관리자

 연무장

 연기군

 1921. 6

  52

검도, 유도

조치원경찰서장

 예산상무회연무장

예산군

 1929.10

  36

검도,유도,총검도

예산경찰서장

 보은공회당

보은군

 1927. 4

  144

검도, 유도

內田定吾

 음성연무장

음성군

 1927. 5

  30

검도, 유도

음성경찰서

 청주강무장

청주군

 1929.10

24

유도

濱田淸太郞

 제천연무장

제천군

 1931. 6.

30

검도, 유도

제천경찰서

 충주연무장

충주읍

 1931.10

40

검도, 유도

충주경찰서

[전라남북도]

설비명칭

소재지

개설년도

면적(평)

용도

관리자

 연무장

제주도경찰서

 1923. 2.

  29

 검도, 유도

제주도경찰서

 연무장

광양군

 1924.12

  22

 검도, 유도

광양경찰서

 목포상무관

목포부 대화정

 1926.10

  60

 검도, 유도

목포상무회장

 여수홍무관

여수읍

 1927. 6.

  30

 검도, 유도

古川安一郞

 완도연무장

완도읍

 1927. 6.

  99

 검도, 유도

전남상무회장

 임실군연무장

임실군

 1929. 5.

  12

 검도, 유도

임실경찰서

 금산연무장

진안군

 1929. 6.

  58

 검도, 유도

금산경찰서


[경상남북도]

설비명칭

소재지

개설년도

면적(평)

용도

관리자

 부산경찰서연무장

부산부 영정 

 1924. 5.

  37

 검도, 유도

부산경찰서

 경남경찰관무도장

부산부 부민정

 1925. 5.

  65

 검도, 유도

경상남도

 부산상무관

부산부 부평정

 1927. 9.

  17

 유도

山下亦一

 무덕관

부산부 초장정

 1931.10.

  104

 검도, 유도

渡辺豊日子

 마산청년회검도장

마산부 본정

 1932.10.

  50

 검도

마산청년단

 철도국국우회무도장

부산부 초양정

  119

 검도, 유도

철도국국우회 부산지부

 경북무덕전

대구부 동운정

 1923.10.

  575

 검도,유도,궁도

재단법인 경북무덕회

[황해도]

설비명칭

소재지

개설년도

면적(평)

용도

관리자

 유,검도장

兼二浦邑

 1918

  36

 검도, 유도

荻野友助

 김천구락부

김천군

 1924. 6

  49

 검도, 유도

김천경찰서

 무덕관

사리원읍

 1928. 8.

  20

 검도

사리원경찰서

 무덕관

사리원읍

 1928. 8.

  17

 유도

사리원경찰서

[평안남북도]

설비명칭

소재지

개설년도

면적(평)

용도

관리자

 평양장무회

평양부 상유리

 1924. 4.

  40

 유도

평양장무회

 양무관

평양부 천정

 1929

  15

 유도

神野辰雄

 검도 및 유도장

추을미읍

 1930.12

  39

 검도, 유도

평양광업부

[함경남북도]

설비명칭

소재지

개설년도

면적(평)

용도

관리자

 신흥경찰서 연무장

신흥군

 1923.11

  23

 검도, 유도

신흥경찰서

 함남헌병대도장

헌병대내

 1924. 5.

  18

 검도, 유도

함흥헌병대장

 함남무덕반

운흥리

 1927.11

 818

 검도, 유도

함남경우회

 조선실소회사무도장

함주군

 1929

 230

 검도,유도,궁도

실소회사오락부


  검도는 전국 각지에서 실시되었으며, 일본통치기 스포츠단체의 성격을 띤 단체로는 경성무덕회가 1912년 7월 경성부 황금정(서울의 황금동)에 설치되면서 검도를 보급하였고, 경기회 및 강연회 개최가 이루어졌다. 전남 목포상무회(1926)가 검도를 비롯한 유도를 장려하는 목적으로 설립되었고, 흥남구락부(1927)의 경우는 검도를 비롯해 각종 스포츠종목을 장려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또한 인천체육협회(1925), 경기도체육협회(1926)을 비롯 각 지역의 체육협회에서 검도경기를 개최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각지역의 협회에서 특정종목을 육성하는 특성도 나타나는데, 경성의 강도관조선지부(1917)와 함안체육회(1931)의 경우는 유도를 주요사업종목으로 협회를 운영하였다.

  이외에도 일본문부성에 보관중에 자료에 특색있는 것은 일본의 궁도가 우리나라에서 조직적으로 활동한 점이다. 전국각지에 궁도를 장려할 목적으로 구락부가 형성되었는데, 경기도의 경우는 인천무덕정, 충청도의 경우는 군수가 대표자로 설립한 각종 체육협회에서 궁도를 장려했으며, 경상도의 경우는 대구체육협회가 궁도장려에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전라도의 경우는 영암궁도회(1925), 진도궁도회(1929), 제주궁도회(1931) 등에서 궁도장려의 독립적 조직을 갖고 있었고, 강원도의 경우는 철원체육회가 중점적으로 장려했으며, 황해도와 평안도의 경우는 각지역의 군수가 대표성을 체육협회를 운영하여 그 운영내용에 궁도를 다루고 있다. 이외에도 함경도의 경우는 원산체육협회(1925), 함흥체육회(1926), 흥남구락부(1927) 등에서 궁도를 장려하는 정책을 시행되었다는 것이 흥미롭게 대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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