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홍주(珍島紅酒) 이야기

2010. 1. 7. 19:00In Life/風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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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세미나 발표 의뢰가 들어왔다.
진주홍주와 문화마케팅에 관한 주제다.
원래 도시마케팅과 지역마케팅에 활동하면서 축제와 연관짓는데 관심이 많았던 나로서는 재미있는 것을 하나 발견했다. 
진주홍주가 우리 집안 술이란다. 
일반인들이 인식하는 진주홍주는 독한술, 마시면 다음날 엄청 괴로운 술로 알려진 것이지만, 그 역사를 조명해 보면 좋은 술임엔 틀립없다. 
양천허씨 종가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는 허씨문중의 유명한 음식소개에는 진주홍주를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 있다.


진도홍주(珍島紅酒)는  지초주(芝草酒)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지초주와 박문주가 최고 진상품으로 꼽혔는데, 이는 고려시대부터라고 전하고 있다.
조선 세조때에 경상도 절도사 허종(許琮)의 부인 청주한씨가 홍주의 양조비법을 알고 있어 후손들에게 전하였다고 한다.
성종이 윤비를 폐출하려 어전회의를 열던 날 허종은 어전회의 참석을 말리는 누님의 말씀을 듣고 어전회의에 참석차 입궐중 다리에서 낙마하여 입궐을 못했다.
성종이 사망 후 임금이 된 윤비의 소생 연산군의 보복으로 갑자사화가 일어났다.
이때 어전회의에 참석못한 허종형제는 화를 면하였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그 후 5대 후손 허대(許岱)는 선대부터 물려받은 고조리를 진도로 가지고 내려와 그 부인 경주이씨가 전수한 양조법으로 홍주를 만들었다. 이 비법은 진도의 양천허씨 문중에서 대대로 전해져 계승 보전되었다고 한다.
증류주인 홍주는 지초주(芝草酒)라고도 하며, 고려때 원나라에서 들어왔다는 소주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학자들은 삼별초를 토벌하러 온 몽고인들이 홍주(紅酒) 내리는 비법을 전한 것이 아닐까 주장을 하지만, 재료로 쓰이는 지초(芝草)는 황폐한 몽고에서 재배가 힘들기 때문에 생약(生藥)을 활용한 홍주를 전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 일부에서는 양천허씨(陽川許氏)가 입도(入島)하면서, 연산군때 이주(李胄)가 유배오면서 전래했다고 하나 확인 할 수 없다고 한다.
고려말 이후 우리 선인들은 어느 지방에서나 한주, 백주라 하여 소주를 제조하여 마셔왔다. 본래 소주는 조정에서만 사용되어 왔으나, 차츰 서민층에 대중화 된 것으로 본다. 이 과정에서 소주에 약재를 가미하는 지혜가 생겼고, 약소주 또는 한소주로 발전되어 지방마다 특색있는 명주를 낳게 된 것이다.  
진도 홍주 역시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져 토속 명주로 발전한 것으로 생각된다. 소주를 내릴 때 소주 떨어지는 입에 지초를 놓고 그 위에 이슬이 떨어져 지초를 통과한 소주가 붉은 색이 나는 까닭에 홍주라 한다.
진도 홍주는 전남 무형문화재(지정번호 : 0026-00-00-36)로 1994년 지정되었으며, 그 제조 기능은 허화자(진도전통홍주보존회, 전남 진도군 진도읍 쌍정리)씨가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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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으며, 진주홍주에 대한 문화마케팅 전략은 더욱 신경써야 할 것 같다. 지난해 독일 밤베르크(포도밭과 와인산업으로 유명함)에서 이 지역의 와인을 맛있게 맛보았듯이, 해외나 지방에 가면 꼭 그 지역 술을 마셔야 한다는 나로선 진도홍주가 가문의 술이라는 걸 알게 된 후 농담으로 후배들에게 이렇게 농담도 주고 받았다.

"이제 부터 홍주아니면 안먹는다"

갑자기 진주홍주에 대한 애착이 더해진다. 심지어 아내에게도 홍주제조법을 익히라는 이야기를 농담으로 건넸다. 
붉은 색의 강렬한 이미지.
포도주의 색보다 은은한 붉은 빛에 대한 애착이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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