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여군이 있었다.

2016. 1. 26. 16:28Report/City Marke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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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제주에는 여군이 있었다. 우리나라 여군역사를 새로 써야 할 것 같다. 제주신보에 따르면 조선중기 문신인 김상헌의 기행문인 남사록에 '여정'이라는 여군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턱없이 부족한 관군의 수로는 왜구의 침입에 대한 방어가 어려웠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제주에 거주하는 관민들 또한 집마다 당번제로 번을 서게 되었고, 여성들 또한 이에 동참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임무를 수행한 조선시대의 제주 여군을 “예청”이라고 일컬었다. 이러한 제주 여군 “예청”은 문헌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는데 남사록에는 “성을 지키기 위해 민간에서 건강하고 씩씩한 부녀자를 뽑아 화살받이터에 세웠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남사록은 1601년(선조34년)에 안무어사로 제주에 파견되었던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의 제주 기행문

그리고 아직도 제주도에는 “예청”이 활동하였던 성터가 아직 남아있습니다.  관련자료 <제주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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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제주어로 ‘예청’이라 불리던 여자병사인 여정(女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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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년 제주에서 발생한 모반사건으로 처벌될까 두려워하던 제주도민을 달래기 위해 안무어사(安撫御使·지방에 파견된 특사)로 온 조선 중기 문신 김상헌(1570~1652)이 쓴 기행문인 남사록(南?錄)에 그 기록이 남아 있다.

김상헌은 “내가 알아보니 제주의 성안에 남성(男丁)은 500명이고, 여정(女丁)은 800명이다. 남성이 적어서 만약 사변이 발생해 성을 지키게 되면 민가에서 건강한 부녀자를 골라 성 위에 세웠다”고 했다.

힘이 센 여자들을 선발, 남자들의 빈자리를 채운 것이다. 남사록에는 여정은 적의 공격 목표인 성 맨 앞 돌출부인 ‘살받이터’에 세웠다고 기록했다.

국가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제주는 남자는 물론 여자들도 맨 몸으로 적의 침입을 막아야 했다. 제주 여성들의 강인함은 후대에 이어졌다.

공정식 전 해병대사령관의 회고록에는 1950년 8월 31일 입대한 제주 출신 여성 해병(4기) 126명을 대한민국 최초의 여군으로 인정했다.

그는 여성 군인의 역사는 1948년 간호장교 후보생 교육으로 시작됐지만 실제 최초의 여군은 여성 해병이라고 회고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주 여성 해병은 여성 의용군(육군)보다 6일 빨리 입대했다.

제주신보 2016.01.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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