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출신청이라는 곳은?

2016. 1. 26. 16:41Report/City Marke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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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교회 이기풍 목사는 1908년 처음 칠성통에 임시 거처를 정하고 3명의 신자로전도 시작. 그 후 일도리에 있던 초가집 두 채를 사들여 교당으로 사용하다가 1910년 삼도리에 있던 출신청(出身廳:옛훈련원,자리로 무과급제자가 근무하던 관아) 건물을 사들여 성내교회라고 이름을 붙임.

교회 신도가 늘어남에 따라 제주 동부교회를 설립하면서 성내교회는 제주서부교회로 명칭을 변경. 장로교단 분열과정에서(1951년 신사참배문제로 고신파 이탈, 1953년 신학에 대한 입장 차로 기독교장로회 분열) 성내교회가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이 됨에 따라 신자들도 제주서부교회(한국기독교장로회파)와 성안교회(예수교장로회통합)로 분리. 1994년 제주서부교회는 원래 이름인 성내교회로 명칭을 환원. 20049월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는 성내교회를 역사 유적지 교회로 지정.

 

제주성내교회는 제주도의 옛 훈련원터에 있는 무과급제자가 근무하던 관아터다. 최초의 제주성내 교회라고 한다.

이승훈(1814~1930) 평양 제일 부호, 안창호의 강연을 듣고 독립운동가의 길로 들어섬, 신민회 가담, 오산학교 건립, “민족대표 33인 중 끝까지 절개를 지킨 분으로 만해한용운과 남강뿐이다.” 북간도무관학교사건 연루(안중근의 사촌동생 안명근이 서간도무관학교설립 모금운동하다 발각된 사건으로 총독암살음모사건으로 검거됨), 1911년 유배된 마지막 제주 유배인(제주 성내교회 옆). 자신의 시신마저 실험표본용으로 내놓은 민족운동가 씨앗이 땅 속에서 무거운 흙을 들치고 올라올 때 제힘으로 들치지 남의 힘으로 올라오는 것을 본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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