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대 칼럼] 천안함 피격은 무예정신이 말살된 탓

2010. 6. 11. 13:44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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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의 십팔기보존회 회원들(출처; 십팔기보존회)

천안함뿐만 아니라 우리 군강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가 요즘 군내부의 문제인것 같다. 신무기나 과학이 만들어준 첨단무기로 무장한 군대가 최강의 군대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무엇보다 군이 지녀할 자세는 정신이다. 말로만 정신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한 민족을 살리고, 국가를 지켜야 하는 그런 정신이 강한 군대를 만든다는 것은 옛부터 전해온 진리다. 이런시기에 십팔기협회 신성대회장이 데일리안경기에 글을 썼다. 그의 글을 소개한다.


하층문화를 기반으로 한 한국의 저항적 축제문화

조선 후기 양반문화와 평민문화가 극렬하게 대비되면서 그들의 놀이문화 역시 그 간극이 더욱 확연하게 구분되어갔다. 조정은 양반들의 권력다툼으로 파쟁을 그칠 날이 없고, 백성들은 점점 살기 힘들어지면서 전국 각지에 유랑민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떠돌이 예인집단인 남사당패, 걸립패 등이 생겨나 민초들의 애환을 달래주고 양반들의 행태를 조롱하는 각종 연희가 성행하였다.

이후 나라를 잃고 식민지배를 거치고, 다시 군사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풍물놀이 광대놀이, 살풀이춤, 품바 등 일부 민속연희들이 정권에 항의하는, 민중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투쟁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다. 민주화가 된지 오래인 지금도 우리의 놀이문화는 어김없이 데모, 시위 등등 모든 갈등 현장의 전위에 동원되어 민중들을 선동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관 주도의 축제는 언제나 특색 없이 비슷비슷한 먹고놀자판 장터문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축제 혹은 행사가 강요되고 중복되거나 일회성이어서 생산적이지 못하고, 토마토축제나 머드축제처럼 외국 것을 그대로 모방하는 등 국적불명의 축제까지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놀이문화

이미 한국의 위협적이고 파괴적인 집회문화는 전세계에 소문나 있다. 전통적인 연희들이 민주화 운동, 노사투쟁, 촛불시위 등 반체제적인 집회문화에 휩쓸려 들어가면서 그 순수성은 물론 고급예술로서의 승화 발전을 방해받고 있다. 본디 공동체의 화합을 목적으로 하는 놀이문화는 찾아보기 어렵고, 오히려 계층 간의 갈등 구조를 심화시키는 쪽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지금은 문화전쟁의 시대이다. 국가경쟁력을 위해서라도 이젠 우리의 문화적 수준을 좀 더 높여야 한다. 우리의 놀이문화가 구습을 청산하고 중간층을 위한, 분열과 저항이 아닌 화합과 소통을 위한 진정한 축제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선 우리의 인식체계부터 전환해야 한다.

민주화가 더 이상 서민화를 의미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고급한 문화를 장터로 끌어낸다고 해서 민주화 되는 것이 아니다. 대중문화가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된다고 해서 고급문화가 되는 것도 아니다. 민주사회의 놀이는 저급화가 아니라 중간화 되어야 한다. 중산층이 두터워져야 사회가 안정되듯이 놀이문화도 중간화를 지향해야 한다.

여의도광장을 대신할 광화문광장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이지만 동시에 제대로 된 정문이 없는 대통령관저인 청와대의 그것을 대신하는 역할도 겸하고 있다. 따라서 광화문광장은 서울을 넘어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모든 행사는 대한민국의 품격을 가늠하게 된다. 국가적인 행사나 축제는 반드시 그 격에 맞는 장소에서 행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의도광장을 시민공원으로 만든 후 이를 치를만한 공간이 없었다.

게다가 광화문 광장에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버티고 있다. 따라서 이곳에서 펼쳐지는 축제 혹은 놀이는 그에 어울리는 품격을 갖춘 것이 되어야 함은 말 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무질서하고 자유분방한 하층의 놀이보다는 상위의 절제된 놀이 혹은 행사가 행해지는 곳이어야 한다.

시청 앞 광장은 당연히 서울시민의 것이어야 하지만 광화문광장은 국가의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국가, 혹은 국가 최고기관을 상징하는 권위와 위상을 가진 축제나 그에 걸맞는 중간층의 놀이가 펼쳐져야 할 것이다. 이곳은 단순히 시민들의 휴식 혹은 놀이를 목적으로 한 공간이기보다는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체성, 국가기관의 위엄을 느끼는 장소여야 한다.

잡화점식의 어설픈 하급의 축제나 놀이, 행사의 나열은 자칫 한국문화의 조잡함, 한국인의 문화적 조급성을 드러낼 뿐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그냥 비워두는 것이 오히려 더 광장다운 여유와 무언의 권위를 보여준다.

경복궁, 광화문에는 어떤 행사가 어울리나?

현재 경복궁에서는 ‘수문장 교대의식’이 상설로 행해지고 있고, 궁궐 내에서는 간헐적으로 ‘왕세자 책봉식’ 등 지난 시대의 왕실 행사들이 재현되고 있다.

하지만 수문장 교대의식은 그 역사적 근거가 희박한 것을 억지로 만들어서 그런지 복식만 전통적이지 그 형태는 누가 봐도 유럽의 왕실근위병 교대식을 본떠 급조한 것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어색하고, 그 내용 또한 정적이어서 관광객의 시선을 오래 붙잡아두기엔 역부족이다.

역시 궁궐 내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회성 행사들은 과거의 그것이 과연 문헌대로 재현되는지 확인하는 학구적인 호기심 외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그들만의 행사로 끝난다. 때문에 시민들은 물론 관광객들도 이런 행사에 쉽게 동화되지 못하고, 곧장 발걸음을 옮기고 만다.

경복궁과 광화문에서 행할 수 있는 행사로는 당연히 과거 왕실의 행사나 놀이문화 밖에는 없을 것이다. 몇 년 전 <왕의 남자>라는 영화에서 궁궐 내에서 온갖 저자거리 놀이들이 펼쳐지긴 했지만, 이는 물론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유랑예인 집단들은 조선시대에는 도성 안으로 발도 들여놓지 못했었다.

실제 근자에 들어 궁궐 내에서 음악회, 전통연희를 소재로 한 축제들이 행해진 적이 있지만, 모두 어색한 분위기만 연출한 그들만의 행사로 그치고 말았다. 그렇다고 시민들로 하여금 함께 참여하고 즐기게 할 만한 왕실 놀이가 많지 않고, 대부분 중간화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보니 상설화하기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서민적 마당놀이를 펼칠 수도 없을뿐더러, 고궁을 이용한답시고 귀빈을 위한 만찬이나 상류층을 위해 고급한 현대예술 행사만을 펼쳐서는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시민들의 푸념을 듣게 된다. 과거 궁중의 것이 아닌 행사나 잔치판을 벌렸다간 너도나도 밀려드는 요구를 감당하기도 어렵고, 자칫 역사를 왜곡 혹은 훼손시킬 우려가 있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차별하자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부합되지 않을 뿐더러 격에 어울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문화는 언제나 복잡화를 통해 타락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게다가 광화문광장은 그 주변 건물들의 위용과 자동차의 물결, 소음에 매몰되어 어지간히 강력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역동적인 놀이가 아니고선 기를 펴지 못한다. 주변 환경에 압도되지 않는 남성적 놀이가 아니고선 그곳에 펼칠 수가 없다.

무예청(武藝廳) 복원과 연무의식(鍊武儀式)

무예청은 조선시대 국왕을 최측근에서 호위하던 무예별감(武藝別監, 武監)들의 집단으로, 현재의 대통령 경호청에 해당하는 기관이다. 당연히 조선의 국기인 십팔기에 뛰어난 당대 최고의 무사들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궁궐 내에서 무예를 연습하였으며 왕은 때때로 그들을 기예를 직접 점검하는 시예(試藝)를 가졌었다.

이 무예청 군사들의 연무의식을 경복궁에서 펼치는 것은 역사적 사실에 부합될 뿐 아니라, 경복궁과 광화문을 이야기가 있는, 역동적인 고궁으로 살려내어 국가의 품격을 드높이는 최고의 문화관광 상품이 될 것이다.

더하여 최상위의 의전문화를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중간층 축제로 낮추어, 보는 이로 하여금 은연 중 국가의 권위와 위용, 그리고 유구한 역사 앞에 숙연해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기능도 한다. 비록 조선시대 왕을 호위하고 의전하던 연무의식이지만 이는 간접적으로 현재의 청와대 주인인 대통령의 위엄을 나타내는 역할도 하게 된다.

아무리 현 정부가 격식에 소탈한 실용정부라 해도 갖출 것은 갖춰야 한다. 또한 그동안 자기 무예를 잃어버리고 식민시대를 거치면서 강제로 이식된 일제의 호신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의 무예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한국에도 무예가 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무예, 우리 문화가 바로 서야 우리 정신이 바로 선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은 결국 사라지고 만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치르면서 정립한 조선의 국기 십팔기, 을사늑약과 함께 역사의 그늘로 사라진 십팔기의 실기와 그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지 못한다면 역사는 이 민족을 다시 한 번 무정하게 내동댕이칠 것이다.

우리 문화, 우리 정신에는 무(武)의 정신이 결여되어 있다. 일제에 의해 우리의 무예만 말살된 것이 아니라, 그 정신마저 무장해제되어 아직도 복원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주변국들이 만만히 보는 것이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천안함 사태는 우리에게 상무숭덕의 무예정신을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원문보기 : http://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204925&sc=naver&kind=menu_code&keys=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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