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적 수양, 일제시대 청년들에게 쓴 논설

2011. 10. 3. 16:18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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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 제49호 (1924년 07월 01일)에 논설이 눈에 띤다.   "兄弟들아 武力修養에 힘을 쓰 必要는 업슬가 "라는 주제의 이 글에눈 "무력적 수양"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무술이나 무예라는 명칭보다는 무력적 수양을 강조하고 있다. 당시에 조선에 무도의 유입과 무도장 수도 설명하고 있다.


兄弟들아 武力修養에 힘을 쓰 必要는 업슬가 (형제들아 무력수양에 힘을 쓰 필요는 업슬가)

 
두 말할 것도 업시 오늘날 우리 朝鮮 형제에게는 武力的 修養이 가장 절실히 늣겨진다. 帝國主義 軍國主義의 그 백성들을 본밧자는 것도 안이요 또는 그 主義를 세우기 위하야의 豫備的 의미도 결코 안이다. 다만 주요조건은 내적 외적을 물론하고 각자 개인으로의 생존권을 護持하자 함이요 그 민족으로 조직된 그 사회를 건전케 하자는 말이다. 결코 검을 차고 총을 매고 創을 휘두루자는 말은 아니다. 사정이 허락하지 안으니 별수는 업다만은 만약 사정이 허락한다 하면 그것까지도 차고 메고 두루면서 지내면 더욱 조켓다. 그러나 남을 침해하고 남을 奪取하야 자기뿐 利하자는 침략적 무기는 결코 안이다. 개인으로는 생존보장이요 사회로는 질서유지이겟다. 그러나 이것도 現 사회제도의 下에서 不得己로 하는 말이다. 엇지 하얏든 가난한 집 미천한 집 자식 가티 朝鮮 형제는 아모 활기가 업다. 피가 업다. 잇다해도 熱이 업고 强이 업다. 骨子 업는 사람가티 늘큰한 것이 사실이요 물넝물넝한 것이 사실이요 시드러가는 풀대가티 부들부들하며 허멀둥한 것이 사실이다.
주먹이 튼튼치 못하며 다리가 꿋꿋치 못하다. 얼굴이 할슥하고 등이 구부러젓다. 누구와 싸움을 잘 못한다. 하지도 못하거니와 하게 되면 뒤거름부터 친다. 곳 항복하고 만다. 엇지 그리도 無氣力 無膽力한지 남과 싸우겟다는 용기가 업다. 空然히 남을 침해하자는 故意的 惡鬪가 안이라 남이 나의 생존권을 蹂躙할 때에 그를 防禦하지를 못하며 대항하지를 못한다. 그리할 용기가 업다. 그래서 개인으로나 단체로나 도처에서 무리한 침해를 당하며 도처에서 억울한 눈물을 뿌리고 잇다. 우리는 반듯이 피를 끌일 필요가 잇스며 우리는 반듯이 팔다리를 꿋꿋히 할 필요가 잇스며 얼굴을 불킬 필요가 잇다. 그리하야 용맹한 투사가 될 필요가 잇다. 그리하야 사람으로의<46> 당당한 생존을 保持하기 위하야-
정신 방면으로 육체 방면으로 恐縮만 당하는 今日 우리의 처지이닛가 內로 營養문제 外로 侵害問題에서 엇지 할 수가 업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미지근하나마 피가 잇고 부들부들하나마 뼈가 잇스닛가 될 수 잇는 데까지 수양만 싸으면 될 수 잇는 것이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山野에서 당하는 대로 무력적 수양을 싸을 필요가 잇다. 축구도 조코 야구도 조코 철봉도 조코 棍枝도 조코 또한 유도도 조코 擊劒도 조코 競走도 조코 高廣跳도 조타. 바위를 드럿다 노앗다 함도 조코 나무를 뺏다 꼬젓다 해도 좃다. 무엇이든지 좃타. 뼈가 굴거지고 피가 씩씩할 것이면 다-좃타. 엇잿든 弱으로 强에 敗로서 勝에 다시 말하면 누가 보든지 감히 모욕을 못하리만한 건전한 투사가 되기까지 무력적 수양을 싸을 필요가 절실히 잇다고 한다. 제로라 하는 日本人도 여긔에 잇고 敗하얏지만 그래도 씩씩한 獨逸人도 여긔에 잇고 또 우리의 녯젹 高句麗의 强도 여긔에 잇섯다. 그래서 우리는 本誌의 一面을 특히 武力 修養便에 제공하야 讀者方面의 중요 기사를 號를 딸하 소개하기로 하고 爲先 柔道에 관한 槪義부터 소개한다.
 
柔道의 歷史 及 意義 
講武舘 師範 韓軫熙 
柔道의 舊名은 柔術인데 현대에 至하야 其 意義를 광범하게 하야 此를 柔道라 改名하얏다.
今에 柔術의 기원과 柔術이란 것이 如何한 것인지 其 意義를 略記하야 일반형제에게 소개코져 한다.
 
柔術의 起源 
원래 柔術은 日本의 특유한 기술이라 云하나 其 始祖는 誰며 또한 如何한 시대에 시작된 것인지 확실히 판명된 기록은 無하나 今에 柔道家간의 주장하는 始祖說을 略記하면 녯적 明나라 陳元贇 始祖說, 日本 秋山 始祖說, 日本 宿稱 始祖說, 日本 太古 存在說, 皇子 小碓尊 始祖說 등이 잇다. 今에 各 說을 논평하면
 
陳元贇 始祖說
陳元贇 씨가 萬治2년에 渡日하야 江戶麻布(東京) 國正寺에 주거할 時에 此時에 福野右衛門, 三浦興次右衛門,<47> 磯具次郞左衛門 三浪人이 此寺에 寄寓하얏다.
하로는 陳元贇 씨가 말하되 우리 明나라에 捕人術이 有한데 其 眞術은 熟知치 못하나 其 模形은 다소 覺知한다 함애 三浪人이 此言을 從하야 其 방법과 기술을 修襲하야 결국 其 의미의 심원함에 心術 사용하는 바를 得하얏다. 이것이 日本 柔術 初始라고 東京芝愛宕山에 在한 起倒流拳法碑에도(拳法之有傳也自投明人陳元贇而始)彫記하다. 然이나氏는 二三流儀의 始祖라고는 말할 수 잇슬넌지는 모르나 일반 柔術의 창조자라고는 할 수 업다고 한다. 何故오 하면 대체 陳元贇이 日本에 歸化하기를 萬治2년에 하얏는데 그 時로부터 10년 전 즉 正保4년에 現出된(悔草)라 하는 서적에 柔而捕, 取手 등 문자가 有한 것을 보더라도 능히 알지라. 그러나 陳元贇이 日本 柔術의 발달을 조장하며 촉진식힌 것은 否認할 수가 업다고 한다.
秋山 始祖論
此說에 의하면 寬文 初年에 日本 長崎의 醫師 秋山四郞兵衛義明氏가 支那로부터 縛打術 及 人軆 急所를 학습하야 歸朝後 柔術을 연구하야 柔術을 旺盛케 하얏슴으로 혹 一部 流派의 開祖일넌지는 알 수 업스나 柔術의 始祖라고는 물론 할 수 업다고 한다.
宿稱 始祖說
垂仁 天皇7년 野見宿稱氏가 當麻蹶速과 雌雄을 相爭하야 蹶速의 肋骨 腰骨을 蹴打하야 殺倒케 한 사실에 論據를 두고 柔術 名人이라 稱하얏스나 此는 당시에도 脚戱의 일종이니 柔術의 일종이니 하야 評이 有한 것이라 한다.
太古 存在說
柔術은 日本 太古로부터 有한 것이라. 以上 幾個 증거를 보더라도 인생이 자기의 防衛는 인생 自然性에 基因되는 것임으로 武器 업는 시대에 체력만 가지고 능히 對敵行爲를 하야 蹴倒하며 搏打하는 것을 보와도 알 수 잇슬 뿐만 아니라 日本은 武로써 건설된 이상에 武道 武術은 太古로부터 존재한 것은 사실이라고 하다.
 
皇子 小碓尊 始祖說
景行 天皇27년 熊襲叛之時 皇子 小碓尊이 天皇의 大命을 奉하야 奇計로써 賊魁川上梟帥를 殺倒하야 餘黨을 평정할 때 其 奇計는 單身 女裝으로 梟帥의 營地에 잠입하야 深夜 중 賊 등이 醉臥한 機를 乘하야 梟帥를 육박하고 天命에 의하야 汝를 斬殺할 旨를 告하고 刺殺할 時 梟帥는 大驚하야 과연 日本武尊이라 하고 殺後 餘黨은 자연히 평정되니 是가 敵의 力을 이용한 것이라 하야 柔術의 本義에 적합한 것이라고 한다.
이상 각 始祖說에 各派 其流는 有할지나 柔術의 始祖에<48> 대하야는 余는 陳元贇 始祖說을 신뢰코져 한다. 何故오 하면 萬治2년에 陳元贇이 渡日하야 이상 3浪人의게 敎傳한 후로부터 柔術이란 전설이 有하얏으니 陳氏가 渡日하기까지는 日本의 柔術이 업슨 것은 吾人이 추측상으로 능히 知할 바이다. 然이나 日本人은 太古 存在說을 주장하야 日本의 固有術이라 한다.
秋山 始祖說이 有하나 秋山은 寬文 初年人이오 陳元贇은 萬治2년 人으로 寬文 末年에 사망한 人이니 萬治 후 즉 陳元贇 후의 人인 것을 알지라. 고로 柔術의 助長者라고는 할 수 잇으나 始祖라고는 할 수 업다. 此外 說은 더욱 秋山時代 이후의 년대 인물이니 논평할 여지도 업다.
萬治2년 이후로부터 明治 大革新까지 柔術流派가 46流派로 分裂되야 장려하다가 明治 大革新을 遭하야 一層 亂脈이 되야 衰微에 至하얏다가 明治 초로부터 東京 及 지방에 柔術 道場이 現出하야 武德 涵養의 필요를 高唱하난 者 점점 多하며 國粹保存 又는 체육이라는 명목 하에 此를 장려하며 연구하는 者 점점 증가하야 明治12년에 帝國尙武會(東京)가 창립되고 明治18년에는 講道舘柔道(東京)가 起成되고 明治28년에는 大日本武德會(京都)가 설립되야 斯術은 日長月就로 隆盛됨애 深히 연구를 加하야 종래의 諸流派를 종합하야 오날날과 가튼 진보 발달을 보게 된 것이다. 故로 今日의 柔道는 녯적 柔術과 달나 其 범위를 극히 광범케 하야 投法締法(關節法을 含함) 抑壓法, 殺法, 整骨法을 含하야 軆育, 智育, 德育을 兼한 것이다.
日本에 柔道가 철저하게 국민체육을 위하야 발달되기는 明治18년 講道舘 柔道場이 창립된 후다. 何故오 하면 現世에 至하야 如何한 流 如何한 道場에서 修學하던지 講道舘에 와서 자격을 심사하야 級 又는 段證을 得하기 전에난 정부에셔만 否認할뿐만 아니라 日本 사회에서 자격을 인정치 안이한다. 故로 講道舘流 柔道가 아니면 無用일뿐더러 實地 응용이 적다.
今에 明治維新 이후로부터 今日까지 日本 全島에 국민체육을 위하야 설립된 유도장을 數하면 각 학교 유도부 외에도 幾百處인지 不知其數라. 소학교 이상 학교에는 필히 必須科로 잇서 대대적으로 장려하니 대체 유도란 것이 如何한 것인지 玆에 유도의 의의를 논하면,
柔道의 槪意를 분석적으로 논하여야만 할 터인대 頁關係로 因하야 대체의 의의만 말코져 한다.
柔道는 器具에 의뢰치 안코 赤手로 능히 적을 방어하며 護身하며 완전히 심신을 단련하는 무술이라.
 
柔道의 三大目的<49>
 
1. 鍊身法, 은 신체의 발육을 爲主하난 것이오
2. 勝負法, 은 勝負術의 熟達을 爲主하난 것이오
3. 修心法, 은 정신의 단련을 爲主하난 것이라.
故로 柔道를 修行하는 者는 신체가 건강하야 萬病이 침범치 못함은 물론이오 정신이 상쾌하야 연구력이 충분하며 판단력이 신속하고 신체의 운동이 頗히 自由自在하야 보통인으로 능히 동작할 수 업는 경쾌한 동작도 용이하야 왕왕 身上에 不意의 위험을 避하나니라. 만일 對敵의 경우를 當하더라도 자신의 護守는 물론 攻敵하야 勝함을 得하나니 此는 勝負術도 필요하나 정신의 작용에 주의하야 智와 德을 수양함으로써라. 故로 修心法이 필요하다.
修心法 중 요점을 擧하면 의지를 强固케 하며 膽力을 양성하야 處世上 安心立命케 하며 동시에 고상한 도덕사상을 견고케 하난 것이다.
형제여 보라.
국가의 隆運과 국력의 진전은 국민 각개의 능률에 基因하고 人的活動의 근원은 체력의 강성에 존재하고 心身의 强健과 능력의 증진은 인생의 행복을 輸嬴하는 최대요건 됨을 感得할 때 誰가 체육의 필요를 絶呼치 안을 者-有하리오. 교육의 過半은 체육이오 건강은 인생 최대의 은혜라. 건전한 정신은 건강한 신체에 宿在한다 하는 격언을 엇지 等閒視하리오. 오날 우리는 현대를 각성한 者라, 학습하야 연구하난 것이 第一步요 第二步난 此를 계속하는 것이라. 계속하는 방법은 신체를 건강케 하는 것이라. 신체가 불건강하면 우리의 理想은 姑舍하고 病中 孤客으로 長歎息의 눈물뿐, 如此한 분자로써 조직된 사회는 황무지의 사회오 如此한 국민으로써 성립된 국가는 人形의 국가라. 엇지 장래가 有하리오.
사회 立脚者 선배여, 祝願하노니 自我를 愛하거든 운동을 하라. 사회와 국가의 장래를 원하고 위하거든 체육을 보급식히라. 신체가 불건강한 분자로써 조직된 사회와 국가는 희망이 업는 법이다.
체육을 장려함에 其 방법과 종류가 强多하나 더욱 우리의게는 武道的 修養이 急先務인 줄 안다.
 
朝鮮 內 武道 來歷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에 中央基督敎靑年會內 柔劒道部를 設하야 羅壽泳氏와 劉根洙氏가 3, 4년간 노력하다가 결국 不歡迎의 感으로 右 二氏가 自退함애 其後 金相翌氏가 師範의 前功을 痛歎히 생각하야 其後를 계속하얏으나 역시 自退하고 其後는 朴在英氏가 5, 6년간 自手로 敷疊까지 修繕하며 다소의 비용까지 써가면셔 盡力하다가 결국 관리자의 불만으로 사퇴함애 역사가 깁흔 柔道部는<50> 前功이 可惜하게 되엿다. 此時 姜樂遠氏가 후진의 신체를 위하야 其後를 계속하다가 또한 사퇴하얏다. 此時에 本人이 日本 東京으로부터 귀국하야 大正10년에 靑年會學舘에 취직 동시에 悲運의 柔道部를 담임하야 다소 革新敎授로 진행하다가 작년 9월에 辭任한 후 有也無也의 境에 이르고 마럿다. 朝鮮에 武道場 始祖인 靑年會 柔道部는 何故로 進興치 못하는가.
朝鮮 內 武道場 數(현재)
京城培材學校, 徽文學校, 독립적 기관으로는 朝鮮武道舘, 講武舘, 지방은 大邱鍊武舘
현대 국민체육이 급선무인 삼천리 강산 내 겨우 武道修養處가 56개소에 불과하니 언제나!
국민양성에 중추기관인 중등학교의 당국자의 각성을 促한다.
武道場은 大小를 불구하고 할 수가 잇는 것이오 결코 多大한 비용이 드는 것이 아니다. 학교 不用 공간에 敷疊만 敷하고 지도자만 이스면 족히 막대한 효과를 이르키난 것이다.<51>
<46-51>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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