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 제정형의 형성

2010. 1. 20. 14:56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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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은 원래 생사(生死)의 장(場)에서 마음의 자세, 태도, 공격과 방어의 기술을 연구하는 것이지만, 기존 살상(殺傷)의 기술을 차츰 순화하여 인간수양의 도(道)로서 발달하여 왔고 최근에는 적을 공격하기 위한 것보다 자아의 마음의 적을 극복하기 위한 것으로 차원을 달리했다. 또한 신체적으로는 건강을, 표현적으로는 미적 표현을 추구하게 되었다. 미적인 표현의 예로 스포츠화된 현대무술에서 각각의 무술들은 그 본질을 유지하고 미적인 평가를 위해 태권도의 경우는 품새경연대회, 검도의 경우는 본국검법연무대회, 유도의 경우는 본(本) 경연대회 등을 실시하고 있으며, 그외에도 승급(昇級) 및 승단심사(昇段審査)의 한 부분으로 형(形)은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일본의 경우 다양한 무술유파들이 제정형을 만들기까지 수많은 노력이 있었으며, 우리나라역시 조선시대에 정조(正祖)의《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내용과 같이 다양한 유형의 무술형(武術型)을 정리해 왔다. 이런 무술의 형에 대해 일본의 경우에는 분파된 다양한 형을 종목별로 특징적인 형으로 정리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의 다양한 해석의 차이로 여러 무술단체들이 난립 혹은 분파되어 가고 있다. 이것은 각 단체들의 독단적인 상업성에 치중한 나머지 여러 유형의 무술들이 국내에 난무한 실정이다. 또한 경기위주의 무도스포츠들이 경기력에 치우친 나머지 형의 개발 혹은 형의 수련을 등한시 하기도 한다. 이러한 무술의 형은 실전적인 기술이 형(形)으로 남겨져 오늘날 수련의 일부분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고, 국내의 경우 스포츠화된 무도의 경우 형에 대한 인식이 형식에 불과하여 그 본질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형(形)을 알기전에 알아두어야할 무술에서의 자세란?

무술은 수련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자세(姿勢)를 강조한다. 이 자세라는 것은 대련동작의 기본자세나 대련행위의 준비자세를 말한다. 이것은 이는 적을 전제로 상대를 가해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자신과 대립하는 것이며, 언제 어디서 상대의 공격에 대비하여 이길 수 있는 마음과 기술을 습득하는데 매우 중요한 무술수행의 한부분이다.

실제 임기응변(臨機應變)에 있어 적을 대할때 자세(姿勢)는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과거 일본의 무사들은 일상적인 진퇴시에도 남이 덤벼들 수 있는 틈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원리를 "자세가 있는 것도 같고 자세가 없는 것도 같다"라고 하여 무술수행의 극치인 "무(無)의 자세"라고 했다. 이것은 자세를 잡으려고 해서 자세가 되는 것이 아닌 서있거나 앉아 있어도 자연 모습 그대로의 자세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세를 유지하는 가운데도 일정한 기본적 자세를 배우고 그것을 출발점으로 해서 많은 술리나 변화를 배워야 했다. 이것은 오래된 자세에 포함된 몸을 지키는 것을 도(道)라고도 했으며, 이러한 무술수련에서의 태도와 품위를 새로운 교육의 도(道)로 살린 것이 자연체(自然體)다.

또한 승부에 있어서 외적으로는 생리적, 내적으로는 숨어있는 육체적, 심리적 저항력에 의한 피동(被動)의 입장(立場)을 이겨내서 자신의 주동(主動)의 입장을 확립하는 것이 승리하는 것으로 보았다.

과거 검술에서 무사(武士)들은 적에게 "당했다"는 것도 역시 적으로 하여금 "베게 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기선(機先)을 잡지 못한 것을 치욕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주동적 작용을 잊어 버리지 않는 것이 무사의 생명이 되었고 무도에서의 선(先)이 되었다. 그리고 그 선제공격을 위해 적에 대한 기회를 알아야 했다. "안다(知)"는 것은 눈(眼), 귀(耳), 코(鼻), 입(口), 손(手)의 작용을 초월해서 직감으로 무형(無形)을 보고, 무청(無聲)을 듣는다 라는 데에 있다. 소위 "무심(無心)으로 자연의 묘(妙)에 들어가 무위(無爲)로 해서 변화의 신(神)에 도달한다"라는 경지에 가는 것이다. 그러나 수행자의 입장에서는 오감의 작용에 의지해야만 했다.


殺의 대안, 형(形)의 형성

무술의 기술은 그 종목의 원류가 실전의 장에서 체험을 바탕으로 주관적, 개성적 공부에 의해 고안된 것이다. 이것은 비기(秘技)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많은 류파로 분리되어 대립하였다. 같은 종류의 유파이면서 말기에 가면 분파가 분파를 낳아서 차츰 많은 류파로 세분화 되었다.

무술의 기술구성은 원래 일도양단(一刀兩斷)의 살(殺)을 목적으로 했다. 폭력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최종적으로 살(殺)에 의한 것도 피할 수 없기때문이다. 일부 사려깊은 무술의 달인은 기술의 완성도가 높을때 정신면에서는 자각에 근본을 둔 자기규제에 의해 살(殺)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발달했다고 한다. 이러한 살(殺)에 대한 부정이 위험한 기술을 안전성을 지키면서 연습하는 방법으로 발달되었다. 이것이 바로 무술의 형(形)이다.

과거의 무술형태는 다양하고 기술의 종류도 잡다해 이것에 대처하는 공방의 형(形)역시 다양한 종류가 존재한다. 과거 무사들은 주관적, 체험적 신념이 강한 반면에 과학성과 합리성이 결여된 점이 있기 때문에 무술의 기술은 유파(流派)에 따라 다르게 전해졌다. 기술의 객관적 표현을 하는 장(場)은 실전장이고 묘기였기에 이것을 보편적·종합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곤란하였고, 이러한 사정을 갖고 있던 무술들은 많은 류파로 분리시킨 것이다.

다양한 실전의 기술을 위험없이 습득하는 방법은 정해진 격투형태를 상정해서 상대의 공격에 대응하는 여러가지 동작을 형(形)으로 연습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상대의 공격에 대응하는 방어 및 반격의 기술을 올바른 순서에 따라 행하지만 그 순서의 마지막 동작만은 "힘"을 빼거나 중지함으로서 위험을 피하였다. 이것이 형(形)의 연습법이다. 이러한 형은 수많은 공격과 방어의 기술중에 선택된 공격방어의 순서와 방법이 약속하에 꾸며졌고, 기술의 원리를 알고 기술의 실체를 체득할 수 있게끔 유도했다.

과거에는 무술을 배우는 목적이 실용성을 떠나서 생각되지 않았다. 따라서 형에서 기억한 기술을 자유롭게 의지대로 한정없이 힘을 발휘하여 응용변화의 작용을 기를 수밖에 없었고, 실전이 우선이였기 때문에 평소 형(形)만의 연습으로 실력의 객관화는 어렵고 실전의 장에서만 객관화할 수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실전과 형의 논쟁

오늘날 무도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검도, 유도, 태권도, 합기도 등을 총칭하는 것으로 통용된다. 옛부터 무술을 정신수양이라고 한 이유는 실전의 장(場)에 임하여 이기기 위한 기술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 기술을 통해 평상의 마음자세나 생활태도의 중요한 일까지 수행을 권장했기 때문이다.

무술의 정신수행이라는 것은 기술을 떠난 마음만의 수행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 여기에서 의미하는 마음이라는 것은 승부와 상관없이 동요하지 않는 마음이고, 승부가 생사와 이어져 있기 때문에 죽음의 공포를 눈앞에 두고도 동요하지 않는다는 마음을 말한다.

기술은 아무리 뛰어나도 격투종목의 상대성이 있기 때문에 기술만을 의존할 수 없었다. 여기서 절대로 패할 수 없다(절대불패(絶對不敗))는 마음을 얻기 위해서 종교적 신념을 가져야 했다. 무술수행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음의 문제에 있어서 옛부터 무사들은 주관적 개념을 말했기 때문에 마음에 대한 표현이 가지각색이었다.

일본무도에서는 부동심(不動心)이나 무주심(無住心), 공(空)의 마음 등과 같은 불교적(佛敎的) 표현이 많고, 특히 유술의 문서에는 기(氣), 화(和), 유(柔), 음양(陰陽) 등의 유교적(儒敎的) 표현이 많았다. 이것은 무도가 생명을 담보로 하는 투쟁의 기술에서 출발하여 승부의 세계를 초월하려는 마음의 탐구로 이어졌기 때문에 불교의 생사관(死生觀)이나 유교(儒敎)의 대자연(大自然) 융합(融合)의 도(道)가 접목된 것이다.

이처럼 武術의 기술이 위험하고 무한정한 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연습을 할 수 있을까 라는 것이 오래전부터 커다란 과제였다. 이러한 풀이로 형(形)이 존재한다. 이 형을 반복연습해서 기억을 살려 나가자는 것이다. 형(形)은 과거의 무사들이 실전의 장에서 생명을 걸고 익힌 기법(技法)이나 심법(心法)을 집적한 것으로 기술을 올바르게 익히기 위해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형(形)의 연습은 쌍방 혹은 한쪽의 자유의지 활동을 제한하여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연습이 완결되는 것은 아니다. 기술수행의 어려움은 쌍방의 자유의지 활동에서 기술(技術)을 겨루고 마음을 단련시켜서 공격과 방어의 변화의 원리를 심도 깊게 갈파하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형(形)의 연습은 필연적이며 그 기술의 살아 있는 동작을 체득하기 위해서는 응용(應用)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

일본의 경우 전국시대에는 그 응용의 공간이 실전의 공간이었으나, 에도(江戶)시대를 맞이해서 그 공간은 사라지고 형(形)만의 연습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이에야스(家康)는 야규우 무내노리(柳生宗矩)의 검선일치(劍禪一致)의 검법과 주자학의 양두마차로 정치를 하여 막부말기까지 이어졌다. 선승인 다쿠안(擇庵)의 영향을 받은 야규우(柳生)신카개류(新陰流)는 활인검으로 발전하였다. 그 무렵부터 일본의 검법은 실전형에서 도장형으로 바뀌어 형의 검법시대로 들어간다. 검만이 아니라 선(禪)과 만난 모든 기예(技藝)들 역시 형(形)의 길로 나아갔다. 이것은 자칫하면 방법에만 의존하고 객관적 힘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독선이 되기 쉽다는 이유로 당시 화법검법(華法劍法)이라고 하여 업신여겼다. 이것을 시정하기 위해서 유생류(柳生流)의 대(袋じない(本識三問答))나 직심영류(直心影流)의 나가누마시로자에몬(長沼四郞左緯門(正德年間)), 일도류(一刀流)의 나가니시주조(中西忠藏(寶曆年間)) 등에 의해서 죽도검술(竹刀劍術)의 연습법이 발명되어 기술이 많이 향상되었으며 이것이 오늘날 경기검도(競技劍道)의 기원이 되었다.

유술(柔術)의 경우도 기술의 내용이 복잡하기 때문에 쌍방이 자유의지 활동으로 연습하는 방법, 즉 자유연습법(自由練習法)을 발명했다. 메이지(明治)에 들어와 유도에서 처음으로 메치기와 굳히기의 자유엽습법이 행하여졌다. 그러나 연습법이 시작되었어도 한참 동안 실전(實戰)의 장(場)에서의 수행이라는 사고에 머물러 있었으며 경기화의 방법이 불완전하였기 때문에 무도연습은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스포화된 무도에서는 경기화되고 있는 이상 무도의 형은 수련의 한 의미를 줄 뿐 스포츠상의 겨루기에서 이기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스포츠화된 무도가 정신과 육체를 함께 연마한다는 측면은 다른 스포츠와 크게 다르지 않다. 흔히들 무도는 스포츠화되면서도 "다른 스포츠와 다르다"라는 합리화를 하려 든다. 과연 다른 스포츠와 뭐가 다른지라는 정확한 설명없이 "도(道)니까"하는 식의 설명에 그치고 있다.

경기화라는 것은 무한정의 기술을 한정해서 일정한 격투형체, 즉 경기규칙(rule)에 의해 지배돼 승패를 결정한다. 예를들어 검도경기의 경우에 머리, 손목, 허리, 찌름부위(목이나 가슴)로 한정되었다. 이러한 제한된 수련틀은 일본의 Kendo의 수련체계중 하나인 거합도와 도법의 변화나 진검의 베기로 대응하는 기술들은 상실되었다.

하지만 "무도가 다른 스포츠와 달리 존재가치가 있다"라고 할 때 무도는 과거에 생사를 분명하게 하는 목적이 현재의 스포츠화된 무도의 모습에도 존재한다. 그것은 실전적이고 살인적인 기술이 형(形)으로 남아 있는데서 알 수 있다. 이러한 형은 실제 상대를 죽이기 위한 실전성이 밑바탕이 되어 완성된 것이다. 여기서 형(形)은 기술의 목적, 방법, 순서 등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신체의 동작이고,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것으로 수많은 수행자들의 체험과 연구의 집적(集積)을 통해 정형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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