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상무예, 정부에서 복원지정한 무예

2010. 5. 17. 09:51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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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통무예진흥법 제정을 계기로 전승무예, 복원무예, 창시무예 등으로 분류된 분류식이 등장했다. 씨름, 택견, 국궁이 전승무예라면 나머지 대부분은 복원무예이거나 창시무예다. 이 중에서 복원무예는 10여개의 단체가 있다. 이 단체들은 대부분 개인이 복원한 무예들이다. 개인이나 개인단체가 중심이 되어 문헌을 토대로 복원된 것이다. 그러나 복원과정에서 정부가 참여한 무예도 있다. 대표적인 무예가 마상무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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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상무예는 1997년 문화유산의 해를 맞이 하여 문화유산의 해 조직위원회(위원장 고병익)와 문화체육부(장관 송태호)에서 복원작품 지정으로 인하여 당시에 활동중이던 한민족전통마상무예협회(현, 한민족전통마상무예격구협회)가 참여하여 복원하게 된다.

그 해 마상무예협회는 한국마사회에서 처음으로 마상무예와 격구(고려경기격구)가 우리나라 최초로 시연이 이루어졌으며, 문화유산의 해 조직위원회(정부복원팀)가 주최하여 대구 달구벌축제와 익산에서 열린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정부팀으로 출전 격구를 시연하게 된다.

1997년 12월, 한국마사회에서는 <한국의 마상무예>를 발간한다. 이 전문서는 한국의 마문화총서 10권 시리즈를 기획하던 중 2번째 작품이 된다. 또한 같은 시기 창덕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어 창덕궁에서 가진 해단식에서 마상무예 복원관계자들은 정부 표창을 받게 된다.

마상무예는 복원과정에서 언론을 통해 알려졌으나 격구는 쉽게 접하지 못한 것이었다. 마상무예협회를 통해 최초로 선보이게 된다. 이 당시 복원된 격구는 고려경기격구로 양팀이 출마표(스타트 라인)에서 대기하다 격구공이 던져지면 일제히 달려 나가 공을 쳐 정면 240미터에 있는 단구문(한쪽에 있는 골문)에 공을 집어넣는 경기를 복원시켰다.

그 후 1999년에 비로소 양쪽으로 서로 달려가며 공을 넣는 쌍구문( 축구와 같은 형태)의 가장 난이도가 있는 격구가 복원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쌍구문 격구는 고대 페르시아에서도 했던 방식이고 기마전의 양상을 가장 잘 나타낸 격구다. 격구에서 말을 다루는 기마술은 달리는 말을 급정거, 급출발, 급회전 등 말을 가장 난폭하게 다루는 기술이 필요하다. 격구경기 진행 중에도 공이 말에 맞을 수 있으며 이 때에도 말이 놀라지 않고 공을 쫒을 수 있도록 말을 다룰줄 알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것은 말과 격구선수가 호흡을 가장 잘 맞아야 훌륭한 기술을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마상무예’라는 용어는 한민족마상무예협회가 활동하던 1994년부터다. 같은 해 8월 28일 협회관계자들에 의해 처음으로 복원하여 공개시연을 했고, 그 후 1995년 한국마사회 초청으로 마상무예가 마사회와 함께 시연을 하게 된다. 마사회에서는 1996년부터 <마정사>라는 책으로부터 시작하여 <한국의 마상무예> 등 사료작업을 하게 되며 이 때 문화재위원이던 당시 중앙대의 임동권와 정형호 교수 등이 사료정리작업을 하고 실연에는 마상무예협회장이었던 김영섭회장이 함께 책을 완성하게 된다. 이러한 복원작업과 더불어 2002년에는 마침내 마지막 남은 마상재를 복원하게 되는데 이때 교전 마상재라는 이름으로 한국마사회에서 복원발표를 하게 된다. 마상재 복원을 끝으로 마상무예의 전과정이 완성된다.

한국마사회에서는 마문화연구총서를 완성하게 되어 한국의 마문화가 집대성되는 역할을 담당한다. 마상무예협회는 ‘마상무예’명칭에 대해 마상무예와 격구 그리고 마상재, 기사, 모구 등 말위에서 펼칠 수 있는 모든 과정을 하나로 통합된 용어로 대표성을 부여하였다. 이것을 한국마사회의 <한국의 마상무예>에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한편, 마상무예에도 유사단체들의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어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민속촌, 경주밀레니엄파크, 경기도의 몇몇 지자체 등에서 행사명이나 행사중 '마상무예'라는 명칭을 공공연하게 사용하는 일이 종종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해 마상무예협회에서는 법적 대 응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무예단체들이 유사단체나 분파의 윤리성이 문제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마상무예의 난립을 막겠다는 것이 마상무예협회의 입장이다.

격구의 복원과정

1997년 문화유산의 해를 맞이하여 그동안 잊혀져 있던 전통 마상무예와 격구가 세계최초로 정부가 나서 복원 발표를 한다. 격구는 고대 기마전의 양상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기마전술로 그동안 역사 사료 속에만 존재되어 왔었다.

  그러나 이 시기 정부와 문화계의 잊혀진 문화 찾기 목적으로 문화유산의해 조직위원회와 문화체육부, 한국마사회, 한민족마상무예협회의 노력으로 격구의 모습이 공개되기 시작했다. 당시 복원된 격구는 전국을 순회하며 국민들과 문화계에 알리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복원된 고려 경기 격구인 단구문 격구가 가장 먼저 복원돼 알려지기 시작했다. 고려경기격구는 말을 타고 하는 우리민족의 유일한 고대 기마스포츠로서 세계기마문화계에 상당히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고려 경기격구는 평시에 훈련을 통하여 기마전술을 익힐 수 있으며 이러한 것은 기사를 하거나 모구를 하거나 각종 마상무예의 훈련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어 가장 화려하면서도 고 난도의 훈련이 요구되는 것이 특징이다.  

1997년 첫 선을 보인 격구는 다음해인 1998년 건군 50주년 충무공순국 4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아산시에서 개최된 조선시대 무과시험 재연에서 그동안 잊혀져 있던 무과시험격구가 복원돼 일반인들에게 알려진다. <무예도보통지>에 나오는 격구의 구장도는 그동안 해제된 기록이 없다가 이때 처음으로 완전하게 풀어져 세상에 선보인다. 무과시험격구는 개인이 구장도에서 일정한 법칙에 의거하여 시험을 보는 개인과목이다.

199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건군 50주년기념사업으로 국방부 초청에 의해 마상무예와 격구(쌍구문격구)가 선보인다. 이때 처음으로 복원돼 선보인 격구는 쌍구문 격구다. 육군사관학교에서 국방부장관 및 외국 무관사절단과 삼군사관학교학생들이 전부 모인 가운데에서 과거 우리민족의 우수했던 군사문화가 한 자리에서 시연되는 영광을 안아 많은 사절단과 귀빈들로부터 극찬을 받게 된다. 이때 복원된 쌍구문 격구는 격구 중에서도 가장 거칠고 위험하며 난이도가 높은 경기로 축구처럼 양쪽 진영에 대기하는 격구선수들이 격구장에 공이 던져지면 일제히 달려 나와 공을 뺏아 치며 상대방의 구문에 골을 넣는 경기로 격구 중에서 가장 화려한 경기격구이다.

마상무예협회는 궁중보격구의 복원에도 노력했다. 2003년 10월14~17일 제44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서울시 대표로 궁중보격구를 복원하여 민속예술축제에 출전하여 은상을 수상하게 된다.이후 육군선진병영화의 일환으로 육군전체에 지상격구가 보급되어 장병들의 체력 향상에 이바지 하게 된다.

이러한 격구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격구가 존재했으며, 격구 그 자체가 우리 민족과 함께 해 온 세계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있음엔 틀림없다. 2003년 궁중보격구가 복원을 계기로 격구의 전과정이 복원되었다는 점도 우리나라 전통무예발전에 큰 기여를 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복원을 위한 정부와 관계기관, 그리고 마상무예협회의 노력과 이를 전승하고 있는 마상무예협회의 노력과 애정이 없었다면 그림속의 격구, 책속의 격구로만 남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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