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무예형성기의 인물, 반기하

2010. 4. 14. 20:59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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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무술의 초창기에 중심 인물이 된 해범 김광석 선생과 원로 무예인들이 1970년 10월 3일 개천절을 맞아 해범 선생의 ‘십팔기 도장’(서울역 부근) 개원을 축하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일본 체술원 출신의 전설적 무예인 반기하 선생, 팔괘장의 노수전 노사, 뒷쪽 서 있는 사람이 김광석 선생.(출처: 세계일보, 2010.04.06. 박정진의 무맥)

세계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박정진의 무맥>에 해방이후 현대무예형성기의 주요인물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 일본 체술원 출신의 반기하는 한국무예사에서 관심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연재된 내용에서 반기하에 대한 이야기를 요약해 본다.

이 연재물에 의하면, 반기하는 제자를 양성하지 않아 그의 대가 끊어졌다는 점이 약점이긴 하지만 거의 전설적인 인물로 설명하고 있다. 특히 가라테가 일본의 대중적인 무도였다면 체술(體術)은 귀족들의 무도로, 체술은 일본 왕족과 귀족들만을 위한 호신술이었다고 한다.

체술원에서는 도합 16가지의 체술을 가르쳤는데, 모두 자기 몸을 보호하기 위한 맨손 기예들로서 잡아채고, 꺾고, 넘어뜨리고, 젖히는 금나술(擒拿術) 위주였다. 이와 유사한 기예들이 1940년대 전후에 일본 시중에서 호신술로 보급되다가 합기도(合氣道)로 진화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반기하는 체술을 비롯해 여러 무예를 섭렵하고 또 나름대로 큰 성취를 얻었으나, 시중의 무예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집안 내력이 친일 귀족이었다는 점에서 자숙하는 의미에서 현실 참여에 회의적이었고, 중국 등지로 떠다니며 낭인 생활을 하다가 일생을 마친 사람이라고 한다. 그는 체술은 물론이고 합기(내공)와 중국무술도 상당한 경지에까지 이르렀고, 그는 결국 한중일 무술을 전부 익힌 보기 드문 인물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합기도계의 많은 원로들이 그를 만나기를 소원하였지만 실현한 적이 없었고, 또한 단 한 명의 제자도 두지 않고 80년 무렵 타계했다고 한다. 생전에 무예계 사람으로는 오직 십팔기의 해범(김광석)과만 교류하였다고 하고 있으며, 60년 후반에서 70년 초반, 십팔기의 서울역 도장으로 해범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항상 해범과 도장 옥상에 올라가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서로 무예를 교류하였으며, 해범의 제자들 가운데서 자신의 무예를 이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으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원문보기 : http://www.segye.com/Articles/NEWS/CULTURE/Article.asp?aid=20100406003520&subctg1=&subctg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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