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기도명칭 이대로 좋은가? (1)

2010. 6. 13. 01:15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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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미국의 아이오와대학교에 교환교수로 가 있는 선문대 최종균 교수는 미국의 다양한 무술원로들과 국제적인 무도계의 동향을 파악, 연구하고 있다. 최 교수는 합기도 전공 교수로 국내 합기도계의 최대 관심사인 단체 간 통합문제와 합기도 명칭에 대한 논란들에 대해 심도 깊은 연구를 진행 중이다. 오늘은 그가 고민하고 있는 합기도 명칭에 대해 얘기 들어 본다. -편집자 주-

한국무예의 분열원인, 합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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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기도인으로서 바라보는 한국 합기도의 상황은 참상이라 할 만큼 비참하다. 한국 합기도 단체장들의 너무도 천박스런 이전투구의 모습들이 일선 합기도인들을 아연케 하고 있다. 송사(訟事) 만능주의와 같은 천박한 민주주의도 아니고 무슨 고소와 고발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으니 이제는 지겹다 못해 신물이 난다. 왜 이렇게 무인답지 않은 무분별한 짓거리가 횡행하고 있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러한 합기도인들의 이전투구 모습은 같은 합기도인들 뿐만아니라 여타 무도지도자들에게도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그들은 합기도의 이전투구를 보면서 “합기도는 어른이 없고 제대로 된 사제정립이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망나니와 같은 행동을 서슴치 않는다”라고 비아냥거리고 있다. 더구나 이러한 이전투구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닌 오랜 합기도의 구태라는 점에서 더욱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왜 이렇게 합기도가 조롱거리가 되어야만 하는가?

한국 합기도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항상 자랑하고 있는 “합기도는 태권도 다음으로 많은 보급화가 이루어졌고, 여타 무도는 스포츠화 되어서 무도성을 찾아볼 수 없지만, 합기도는 무도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기 때문에 한국을 대표하는 무술은 바로 합기도다”라는 주장은 모든 합기도인들이 입버릇처럼 되뇌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러한 합기도인들의 평가와는 달리 한국합기도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이 부정적이다. 도대체 한국합기도는 무도로서의 위상 정립과 한국을 대표하는 무예로서 존재감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가치가 있는가? 오히려 한국무예를 분열시키는 한 원인으로 주목할 만큼 합기도에 대한 평가는 매우 절망적이다.


그렇다면 한국합기도의 분열과 이전투구는 도대체 어디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일반적으로 합기도인들의 밥그릇 챙기기와 사리사욕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원인분석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유사한 모습은 합기도만의 문제가 아니고, 여타무도에서도 이러한 분열과 파열음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질적인 합기도의 문제점과 병폐를 새로운 시각으로 도출해야만 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한국형 합기도의 변화된 모습을 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한국합기도의 성립과정과 발전과정 속에서 그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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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대전대에서 열린 무카스배 합기도대회 현장 모습


주류무도(유도, 검도, 태권도)에 밀리고 지도자들의 무력(武歷)은 다양

지금까지 한국합기도의 분열모습은 다른 측면에서 볼 때, 합기도 발전의 한 단면으로도 해석되기도 하였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의 합기도가 있기 까지는 합목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의 변화를 추구해 왔으며, 이러한 기술의 변화는 발전과정으로서 어느 정도 인정되어 왔다. 초기의 합기도 기술을 살펴보면 술기와 대련을 불문하고 매우 단조롭고 투박하다는 인상이 짙다. 당시에는 실전에서 즉각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강한 무술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강박관념도 있었다. 이러한 강박관념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탈왜색이 모든 무술의 생존방식이었던 과정을 거치게 되면서 점점 구체화 되었다. 이후 6.25의 참상과 베트남전쟁을 거치면서 더욱더 강한 무술적 성격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므로 한국합기도의 무술로서 갖추어야할 실전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당시의 군사문화가 주류(Main Stream)를 형성하던 시대적 특성상 강하지 않은 무술은 대중들에게 외면당하기 마련이었으며, 대중들의 기억 속에 살아남기 힘들었다.

또한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한국무술의 주류와 비주류로 양분되는 모습을 띠게 되었다. 기존의 치안을 목적으로 유입되어 활성화 된 유도와 검도가 학원무도로서 일찌감치 주도권을 잡아가기 시작하였고, 뒤를 이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태권도가 집중적으로 양성되기 시작하였다. 태권도의 한국화 과정에 대한 논쟁은 논외로 하기로 하고, 아무튼 태권도는 정부의 집중적인 보호 육성무도로서 국제화에 박차를 가해 왔다.

이러한 무도육성의 특정무도 쏠림은 점차 심화되었고, 주류무도에서 제외된 무술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수련체계가 비슷한 무술에 더부살이를 시도하기 시작하였다. 그중에서 그나마 무술단체로서 형태를 갖추고 수련체계를 갖춘 합기도와의 습합(習合)이 가장 용이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합기도의 초기 지도자들의 무력(武歷)을 살펴보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지도자는 자신의 합기도는 가전무술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또 어떤 지도자는 비밀리에 전수 된 불가무술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 밖에 표현은 다르지만 사가무술이니 도가계열무술이니 하면서 혹세무민하는 지도자들이 매우 많았다. 또한 합기도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전통성과 신비주의를 내세우기 위하여 기합술이니 혈도무술이니 하는 모호한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초기 합기도를 구성하였던 지도자들이 1990년 이후에 정부의 독과점적인 법인형태를 지양(止揚)하기 시작하면서 우후죽순과 같이 새로운 무술이 파생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합기도를 분열시키는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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