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이 탐한 조선세법(朝鮮勢法)

2010. 1. 29. 13:43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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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세법(朝鮮勢法). 17세기 초 중국의 모원의(茅元儀), 1594∼1644)가 쓴 중국의 병법을 집대성한 <무비지(武備志)>에 나오는 검법이다. <무비지>란 중국 역대의 모든 병법서(兵法書)를 참고하여 명(明)나라 말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84권부터 92권까지가 교예편(敎藝篇)으로 여기에 유일하게 검법(劍法)이 있는데 이 검법의 이름이  ‘조선세법’이다.

모원의는 조선세법에 대해 '근자에 호사자(好事者)가 조선에서 검법을 얻었는데 그 법이 구비되어 있다. 중국에서 잃은 것을 사예(四藝)에서 찾은 것이다'라고 설명해 당시 검법의 존재를 말하고 있다.  또 현대 일본검도인 'Kendo'의 정립과정에 조선세법도 영향력이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무예도보통지>에 있는예도에도 영향력이 있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조선세법은 한, 중, 일의 검술에 영향력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모원의(茅元儀)의《武備志》

조선세법의 세법구성은 거정세 점검세 좌익세 표두세 탄복세 과우세 요락세 어거세 전기세 간수세 은망세 찬격세 요격세 전시세 우익세 게격세 좌협세 과좌세 흔격세 역린자 염시세 우협세 봉두세 횡충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조선세법의 다양한 기술은 일본의 스포츠화된 검도인 'Kendo'의 유형과는 많은 부분 다르다. 직선적이 아닌전후좌우 변화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각 무예단체들은 전통 검법이라고 하여 제각기 해석하고 복원한 상태에서 보급하고 있다. 

조선세법의 국내 연구는 1999년에 한국체육학회지에 이종림에 의해 24세 중 8세만 해석해 발표되었고, 2000년에에는 수년간 조선세법에 대한 연구를 해 온 김재일에 의해 <조선세법>과 비디오 영상자료가 발표되었다. 그 후 일부 단체들의 개별 연구들이 있었다. 김재일의 경우는 조선세법 전반에 대해 사진과
함께 수록하고, 검과 도의 역사적 추적 등을 통해 검과 도의 구분 및 변천과정 등을 다루고 있다. 특히 조선세법에 대한 완전한 해부를 했을 정도로 이 세법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연구자는 일본검도를 수련한 대한검도회 소속으로 이종림의 경우는 일본식 해석이
강하다는 평가와 김재일의 경우에는 조선족인 허일봉과의 공동복원을 통한 것으로 중국식 해석에 가깝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사실 검의 원리가 중국식, 일본식은 뚜렷해도 한국식은 애매모호한 상태다. 

이러한 연구와 복원의 노력들은 아직은 진행과정이다. 미완성의 복원단계라 이야기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각 단체별로 해석의 차이가 있고, 특히 대한검도회내에서도 조선세법에 대해 두 연구자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대한검도회에서는 이 세법에 대해 별도의 승단제도를 만들어 단증을 부여하고 있다. 일명 이종림식 방식을 채택하여 검도이외의 조선세법단증을 부여하고 있다.

대한검도회뿐이 아니다. 기타 무예단체들이 조선세법을 표방하며 제각기 다른 해석을 통해 전통무예라고 하고 있고 전통검법이라고 보급하고 있다. 본국검과 더불어 검도계에 급속하게 보급되고 있다. 이러한 서로 다른 해석과 복원의 차이때문에 수련생들은 혼란스러운 상태다.

각 단체별 해석은 검술의 특성과 운용법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검법의 해석과 재현이 어떤 방식에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근원에 대해서는 아직 논리가 미약하다.

조선세법은  <무비지> 게재 이전과 이후에도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에 이르기까지 공유하고 있던 검법일 수 있다. 이런 조선세법검법의 복원 및 재현작업은 국내무예단체 관계자뿐만 아니라 각국의 전문가들과 공동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다. 따라서 국내 검도단체들부터라도 우선 복원 및 재현을 위한 공동연구를 통해 지속적인 검법 교류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선행연구와 복원자를 비롯해 각 검도단체들의 협조로 풀어 간다면 복원된 조선세법은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충분할 것이다. 조선세법은 앞으로 검도의 한국화를 위한 기초 작업으로 좋은 소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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