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베르탱은 무술인이었다?

2010. 11. 27. 17:41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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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명예의 전당과 관련해 토론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한국올림피언협회(KOA) 사무총장인 경동대 송석록교수가 뜻밖의 자료를 제시했다.

근대올림픽의 창시자 피에르 드 쿠베르텡은 무술인이었다. 라는 근거있는 사진 몇장이다. 서양에서 유명한 철학자인 플라톤이 레슬링 선수였듯이 쿠베르탱역시 실제 운동을 좋아한 사람이다. 그는 서양의 검술인 펜싱에 대한 애착이 컸다. 펜싱이외도 승마 등을 잘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우리가 흔히 무술사범을 'master' 혹은 'mestre'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것은 펜싱교사의 칭호에서 따 온 것이다. 쿠베르탱은 일본의 무술인 유술, 그것도 현대 유도의 모체인 강도관 유술을 창시한 가노 지고로와도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1909년부터 IOC위원으로 활동한 가노 지고로와 쿠베르탱은 현대유도의 발전을 위해 상당히 친분이 있었고, 노력한 흔적이 남아 있다.

또, 쿠베르탱에 의해 올림픽 스포츠로서 가장 처음으로 제안된 종목도 있다. 바로 근대5종경기가 그것이다. 쿠베르탱은 고대 5종같은 복합적인 경기를 올림픽경기 안에 포함시키기를 원했는데, 그러한 경기가 바로, 체력, 기술, 강한 정신력, 등을 모두 갖춘 최고선수를 탄생시킬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쿠베르탱은 사격, 펜싱, 승마등의 기술적 측면, 수영과 크로스컨트리의 강인함을 연결한 근대 5종경기를 창안했다.

아직 많은 부분 조사를 해 봐야겠지만, 유럽에서의 펜싱과 승마는 고급스포츠에 포함되어 있다. 특히 과거 기사들의 스포츠는 아직도 그 명맥을 유지하며 재현되고 있다.

동양에서만 존재했으리라는 무술이나 무예, 그리고 무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시 한번 서양의 무술에 대해 좀 더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서양인들도 그들만의 문화가 존재했고, 그들만의 내적 가치를 추구하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일까. 무도학을 정립하던 초기 일본의 연구물들은 대부분 기사도와 무사도를 논하는 것들이 많다. 이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도 화랑도를 내세워 여기저기 내적 가치를 포함하려는 연구나 작업들이 있었다.

서양의 스포츠적 사고를 대부분 미국스포츠의 영향으로 보고 있는 것도 문제다.
역사가 있고 다양한 문화가 존재했던 유럽도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무술이 추구하고 있는 몸의 이치와 인간관 등은 동양과 유럽에 있어 얼마나 차이가 있을지 의문이다. 가노지고로가 유도를 완성시키고 세계화하기 위한 노력 뒤에는 미국의 영향보다는 프랑스와 영국과 잦은 교류를 해 온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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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베르탱(1863-1937)은 국제올림픽위원회의 창시자로 복싱, 펜싱, 승마, 조정에 능숙한 만능스포츠맨으로 1925년까지 올림픽 운동을 주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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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베르탱이 사용하던 펜싱 마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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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석록교수는 베르탱이 펜싱을 좋아했기에 올림픽에서 펜싱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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