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어떻게 명문대에 태권도를 들여올 수 있는가?

2010. 10. 3. 12:43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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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에 태권도부가 창설된것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세계 최초의 여성 태권도장 개관’, ‘여성 최초의 국제심판’, ‘이화여대 최초의 태권도부 창설’. 태권도계 ‘여성 최초’라는 수많은 수식어를 만들어 낸 김영숙(63) 사범이 이화여대 태권도부의 ‘선구자(先驅者)’다.

여성 태권도 발전을 위해 맨 앞에 섰고, 다른 여성 태권도인들보다 앞서 나갔던 이가 바로 김영숙이다. 1960년대, 바지 입은 남자들의 전유물이로만 여겨졌던 태권도에 치마 입은 여성의 등장 자체가 도전이었고,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이 개척의 역사였다.
 
그녀가 이화여대에 태권도부를 창설하는 과정을 무카스(www.mookas.com)와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당시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당시 한국 최고의 대학에 태권도부라는 것을 창설한다는 것에 대해 내외부에서 반대 여론이 강했습니다. 어떻게 명문 이화여대에 태권도가 들어올 수 있느냐며, 말이 되는 소리냐면서 단 칼에 거절당했죠. 그러던 중 이화여대의 한성일 체육대학장께서 업무차 유럽을 방문한 때에 아주 충격적인 일을 겪으셨다고 합니다. 바로 태권도의 위력을 느꼈던 것이죠. 당시 한성일 학장께서는 유럽의 한 고위인사로부터 ‘한국은 모르지만 태권도는 안다’, ‘당신의 나라에서는 태권도가 최고일텐데, 이화여대에서는 태권도를 얼마나 하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질문을 한 것이죠. 거기서 한동안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고 해요. 유럽 현지에서 이런 난처한 상황을 겪은 한성일 학장이 귀국하자마자, 이화여대에 태권도부를 창설해달라고 조르던 저를 불렀습니다. 그때 '오케이' 사인을 받은 것이죠.”

명문 이화여대에서 어떻게 태권도부를 창설할 수 있느냐는 당시의 이화여대 분위기. 이것은 다른 남녀공학대학도 다를바 없었다. 우리 스스로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물어보니까 창설하게 된 사연. 이것이 우리나라 대학이었다. 대학이라는 실험적 공간이 아닌 눈치를 보며 "그렇구나"하는 식의 웃지못할 헤프닝이다. 지금의 우리 대학모습도 다를바 없다.

그녀는 1970년에 이화여대 최초의 여성 태권도부 창설을 시작으로 이후 성신여자대학교에서 학생들을, 미국대사관에서 파견 직원들과 자녀들을 대상으로 태권도를 가르쳤다. 1974년도에는 마포경찰서 전투경찰들의 무술 교관도 했다. 미 8군에서는  주변 사람들이 미군들을 대상으로 가르치면 미국 사람 만난 결혼할 수 있다면서 상당히 많은 주의를 줬다고 한다. 이런 과정에서 잠시 정난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체육 교사로 근무한 것을 한국에서의 지도자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후 미국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1972년, 결혼 후 미국 미시건주에 정착했다. 태권도를 그곳에서 지도하다가, 이후 캘리포니아주로 이사를 해 밸리에서 개인 도장을 처음으로 개관했다. 그 이름은 동양 무도관이었다.1987년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태권도 국제심판 2급 자격증을 획득했다. 1990년대 초에는 미국 LA에서 한인 태권도 사범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국제 오픈 대회를 개최하는 등 태권도 우먼파워를 내보였다. 이것이 세계최초의 여성태권도사범인 김영숙의 50년이다.

무카스원문기사 보기 http://www.mookas.com/media_view.asp?news_no=12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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