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아호는 '덕암(德巖)'?

2011. 11. 9. 16:50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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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87.4.28. 11면

1987년 4월 28일 경향신문은 이순신 장군도 '덕암(德巖)'이라는 아호를 사용했음을 고문서 기록에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당시 성암고서박물관 김연창연구원이 <書院兼史記>라는 필서본을 근거로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이 책의 말미에는 '중평(中平)'이란 묵인과 붓글씨 수결사인만 남겼을뿐 작성자가 누구라고 활실하지는 않은 것이지만, 여기에 기록된 내용과 작성연대가 조선현종4년인 1838(무술)년에 '중평'이라는 호를 가진 사람이 쓴 책으로 추청하고 있다.
여기에는 전국 각도 서언, 사당별로 봉안된 선현충신, 공신명단과 현판하사연호 기록부터 무오사화, 갑자사화 등 연대별 사화기록, 임진왜변록, 사화 및 변란당시 절의 공신록과 반역 모의한 흉ㄷ록, 노온, 소론, 사색당파 주동인물까지 기록한 것으로 세로 22cm, 가로 25cm크기 한지 88면으로 편집되었다.
이순신장군의 아호인 '덕암'은 이 책의 <임진왜변록> '절의공신 편'에 중봉 조헌, 천곡 송상현, 제봉 고경명 등과 함께 '덕암 이순신'으로 쓰여져 있다. 이 기록이 발견되기전까지만해도 모두들 '충무공 이순신'이라고 기록해 왔을뿐 이 충무공의 아호는 없었다. 
실제 이 아호의 진위에 대해 당시에는 '충무공'이라는 큰 시호에 말려 아호가 묻혔을 가능성과, 무인이었던 충무공에겐 아호가 없었다는 신중한 검토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됐다. 과연 당시 한림대 최영희 교수가 주장한 '무인은 아호가 없다'라는 말에 신경이 쓰인다. 과연 무인은 아호가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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