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머리를 올리다

2010. 1. 7. 17:46In Life/風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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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영랑호CC
사실 골프는 못친다. 대학시절 수업시간에 조금 배운 게 전부다.
농약냄새맡으며 골프장을 4시간정도 걸어야 하는,
골프채 들고 땡볕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마치 골프를 해야 사회계층상승을 하는듯,
내겐 별로 관심의 대상은 아니다.

체육선생이 골프도 못치면 되느냐는 박사과정 동료들이 강제로 부킹하고 강제로 끌고 갔다.
몇타에 홀인하느냐가 관건.
어려서 구술치기를 해도, 자치기를 해도 그것을 몇번만에 넣었느냐를 세야 하는 스트레스는 골프를 해도 마찬가지였다.

동료들은 어쩌고 저쩌고 사탕발림 소릴 하지만, 내겐 골프친후 싱싱한 회에 소주한잔이 더 기억에 남는다.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골프는 원래 중국이나 우리나라에는 격방이라는 말로 궁중에서 했다고 한다. 
'격방(擊棒)의 -棒은 원래 '몽둥이 봉'이지만「훈몽자회(訓蒙字會)」에 '막대기 방'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한다.

격방을 알게 된 것은 석사과정때 우연찮게 문헌과 논문을 보면서다.
골프가 동북아에 먼저 있었다고 그 자료를 내밀며 당시 모기자에게 농담을 건네니...
골프의 조건을 얼마나 갖추었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스틱-골프채, 공이 뜨는가? 굴러가는가? 홀이 있는가 없는가, 골프채가 몇종류였는가? 기자답게 까다로운 조건을 따졌다.
굴러가든 떠서 가든 구멍에 적은 타수로 들어만 가면 되는거 아닌가?

이렇게 둥근 공을 가지고 노는 것은 격구라는 것도 있었다.
말을 타고 하는 폴로와 흡사한 마상격구, 지상에서 하키와 비슷한 지상격구. 이것도 동양에는 이미 있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포장하고 상품화하고 심지어 중계방송까지 하면서 마치 나도 귀족이네 하며 대리만족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정말 자아자찬이다.
이 모든것이 남을 의식해 생겨난 인간의 졸렬한 습성이 아닐른지.
식민지의 삶속에서 터득한 나보다는 남의 눈치를 보는 종속인간이 아닐른지.
이런 거 좋아하면 충성심이 높을거라는것도, 파시즘에 가깝다는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8월 골프를 친후 소문이 났다.
내가 골프치는게 운전면허딴 후 소문난것과 다름없이 2일만에 전국에 알고지내는 사람들에게 다 알려졌다.

9월. 다들 작정을 했는지, 군산CC로 1박2일을 떠났다.
염전에 골프장을 만들어놓고 다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골프삼매경에 빠진 모습에 웃음만 나온다.
캐디에게 구박주고, 골프채를 내동댕이치고...
여기서도 내겐 휴게실에서 먹은 삶은 달걀과 저녁에 횟집에서 먹은 소주, 그리고 다음날 라운드하기전에 해장한다고 먹은 콩나물해장국이 최고였다.

10월. 이제는 다들 작정을 하고 자연스럽게 만났다. 전남 나주에 있는 좋다는 골프장인데 이름은 생각이 안난다. 14홀쯤 돌았을까. 어두워져 야간골프를 쳤다. 공이 어디로 갔는지, 밤별들은 빨리 집에 가라고 짜증을 내고, 공을 발로 툭툭 차보기도 하고....그날도 광주로 돌아와 회에 소주마신 기억밖에 없다.

광주에서 올라오는 길. 이제는 고교동창들한테까지 소문이 났다. 칠줄도 모르는 골프를 골프장에 갔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소문은 확산됐다. 안성골프장에서 만나잔다. 30명이 신나게 치고 있다. 아예 콘도까지 빌려 놓고 밤새 술을 푸려는 분위기다. 골프가 끝나고 폭우가 쏟아지고, 집에 갈놈들은 가고 20여명이 남아 밤새 술을 마시며 어쩌고 저쩌고 떠든다. 골프보다는 사람이 좋아 만나는 분위기다.

그후, 12월. 연말이라고 몇놈 만나자마자 한다는 말. 스크린을 가잔다.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릴 하는지.
다행히 스크린골프는 만원이다. 당구장으로 자리를 옮겨 그냥 술내기 한판이. 결승 세판까지 갔다.
골프든 당구든 내기를 해야 재미가 있다구? 말이야 바른 말이지. 물린 팀은 밤새 술값내느라 추운 저녁밤을 누비고 다닌다.

2010년은 그런 소모성 게임보다는 여행을 더 많이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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