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갑옷에 이어 '마갑'출토

2011. 11. 3. 18:12Report/S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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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갑출토전경

장식도 세부

대도와 장식도


 공주대학교 박물관(관장 이남석)은 지난 3월말부터 공주시의 의뢰로 공산성(사적 제12호, 1936.1.21.) 내 성안마을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하여 백제 왕궁관련 부속 건물지를 확인하였고, 유적내의 저수시설에서 서기 645년을 가리키는 명문(貞觀 十九年銘)이 있는 정교하게 고급스럽게 옻칠된 가죽 갑옷(찰갑: 비늘모양 갑옷) 1령을 조사하여 발표한 바 있다(2011.10.12.). 그리고 갑옷의 안전한 이전과 보존처리를 위해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센터장 김용한)에서 2011년 10월 19일부터 22일까지 4일에 걸쳐 현장수습을 진행하였다.

  이후 조사단은 갑옷 아래의 퇴적층에 대한 조사를 계속 진행한 결과 명문있는 갑옷과 같은 방법으로 가죽에 옻칠하여 만든 마갑을 비롯하여 대도(大刀), 장식도(裝飾刀), 그리고 철제의 찰갑편 등도 발굴되었다.
 
  말이 착용하였던 옻칠된 가죽제 마갑은 백제지역에서 처음 출토된 것이다. 길이 12~18㎝ 내외의 옻칠된 찰갑판이 너비 2m내외의 범위에 흩어져 있고, 말 등을 덮었던 것으로 보이는 찰갑판이 2줄로 나란히 배열되어 있는 것은 상하로 4겹이 겹쳐진 상태로 남아 있다. 마갑의 상단부는 나중의 퇴적 과정에서 많은 훼손이 있지만 배열된 마갑은 장판과 같이 나란한 모습으로 확인된다. 이 마갑은 먼저 발굴된 두텁게 옻칠한 가죽 찰갑(비늘갑옷)보다 규모가 큰 찰갑 판이지만 옻칠은 훨씬 얇게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마갑 외에 말의 제어구인 재갈이나 등자, 그리고 행엽 등의 장신구는 전혀 없는데, 이 마갑도 갑옷과 마찬가지로 의도적인 폐기로 남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함께 발굴된 대도와 장식도는 갑옷과 마갑의 중간층에 남겨진 것으로, 이 가운데 대도는 장식이 없는 것이고, 장식도는 길이 55㎝의 크기로 은장식과 함께 특히 손잡이 부분에 금장이 이루어져 있다. 철제 찰갑은 덩어리로 수습되었으나 철제 갑옷보다는 투구로 판단될 수 있어 백제시대의 갑주의 형상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가죽에 옻칠하여 찰갑으로 제작한 갑옷과 마갑은 위·아래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잔존되어 있으면서, 칼을 비롯하여 투구로 판단되는 철제품이 중간층에 남아 있어 일정한 목적에 의해 폐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새로 발굴된 마갑도 백제시대의 것으로는 처음 발견된 것이다. 삼국시대 고구려 개마총(鎧馬塚)의 벽화에 갑옷을 입힌 말이 있으나 실물의 마갑은 신라나 가야지역에 철제의 실물자료가 있을 뿐이다. 특히 옻칠한 가죽 마갑 자료는 처음 확인된 것이다.
 
  갑옷과 마갑 등의 유물이 발굴된 저수시설은 현재의 지표면보다 10m의 아래의 불안정한 지반 밑에 있어 붕괴의 위험이 있는 곳이다. 따라서 갑옷의 현장공개와 수습이후에 출토된 마갑은 붕괴 위험이 있는 현장 유지의 어려움, 유물의 훼손 방지 등을 고려하여 수습한 후에 현장조사를 마무리하였고, 갑옷과 마갑은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에서 보존·복원처리가 진행될 예정이다.

  공산성 백제 왕궁 부속시설 내 저수시설에서 발굴 조사된 백제시대 옻칠된 가죽갑옷은 우리나라 고대사회에서 확인된 가죽제 갑옷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일 뿐만 아니라, 마갑(馬甲)의 경우 백제지역에서는 처음 출토된 것이다. 따라서 명문이 확인된 갑옷과 마갑, 대도, 장식도, 화살촉 등의 유물은 백제멸망기의 정황 뿐 만 아니라, 한국고대사 인식에 매우 중요한 지표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책임조사원 이현숙 ☎ 010-5418 -8416 / 041-850-8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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