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엔 무예의 역사가 있다-연무관 소개

2011. 10. 2. 13:59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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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카스 아름다운 산행에 동참했다. 남한산성을 돌아보고 마지막 코스인 연무관에 도착. 복원된 연무관 시설을 둘러봤다.

남한산성에 가면 연무관이 있다. 1624년 남한산성을 건축하면서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었는데, 실제 현판이 인조때인 것으로 조사돼 1624년 무예를 닦고 이를 관장한 곳이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남한산성은 산 무예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충분한 지역이다.

태권도공원이나 세계무술공원이 이곳 남한산성에 건립되었다면 역사와 함께 하는 이만한 공간은 없을 것이다. 사유지가 많아 아쉬움이 많기는 하나, 역사와 함께 하는 교육장소를 고민해 보는 지혜도 필요하다. 자연과 역사가 함께 어우러진 곳이다. 세계문화유산 성곽부문을 등재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있다. 하지만 그대로 방치보다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세계문화유산 유치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남한산성은 유사시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도성을 지켜주는 보장지로 인식되었으며 5군영의 하나인 수어청이 주둔하게 된다. 하지만 남한산성은 결국 러·일 전쟁에서 이긴 일본군에 의해 파괴된다. 일본군은 남한산성에 화약과 무기가 많다는 이유로 1907년 8월 초하루 아침 산성에 불을 질러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든다. 그 뒤 많은 문화유산들을 고치고 손질하기를 거듭해 오늘에 이르렀다.

<남한산성 연무관소개>
성을 지키는 군사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곳으로 조선 인조 2년(1624) 남한산성을 쌓을 때 함께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처음에는 연무당으로 부르던 것을 숙종(재위 1674∼1720) 때 ‘연병관’이라 쓴 현판을 하사하여 통칭 연병관 또는 연무관이라 부르고 있다. 이곳에서 무술을 닦은 무사들 중 무예가 뛰어난 사람은 선발되어 한양으로 진출하였다고 한다.

건물은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벽은 널벽으로 좌우 벽에 널문을 3개씩 설치하였다. 앞면은 벽이나 문이 없이 개방되어 있는데 흔적이 남아있어 여러 차례에 걸친 보수공사로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고지도첩]속의 남한산성도(영남대학교 박물관 소장)

남한산성 실황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일제강점기 광주 읍내 및 행국부 (국립중앙박물관 유리건판 사진)

십팔기보존회 회원들이 남한산성에서 매주 일요일 전통무예를 시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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